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Nov 15. 2019

남편과 함께 본 <82년생 김지영>

81년생 성실애는?


 독서천재 아빠답게 요즘 책 읽는 재미에 흠뻑 취하신 77년생 이강혁 씨는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회식을 하고 술에 얼큰하게 취해 온 날 잠이 안 온다고 포인트 등을 켜고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잠결에 "얼른 자자"라고 하니 "이 책 너무 슬프다"라며 술에 취한 건지 책에 취한 건지 모를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버스정류장으로 출근시켜주며 "어제 그 책 그렇게 슬펐어?"라고 물었다. 사실 술김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나 할까 싶었다.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그 책 이상해. 이야기가."라고...

그다음 날 새벽 4시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신랑은 잠에 깨어 그 책을 한숨에 다 읽었다. 그리곤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휴가를 낸 오늘 나와 함께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같이 봤다.


영화를 보는 동안 대짜로 시킨 팝콘을 끌어안고 내 콜라까지 두 잔의 콜라의 바닥을 본 신랑은 중간중간 나를 흠칫 흠칫 쳐다보았다. 화장지 하나 챙겨 오지 않은 나는 이미 입고 온 맨투맨 티셔츠의 소매를 콧물과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평일 오전 신랑과 함께 <82년생 김지영>을 보러 온건 좀 그랬다. 실컷 울기 힘들었다. 하지만 숨길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고 그런 나를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화장실에 들러 부운 내 눈을 바라보고 숨을 삼키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중 우리 신랑은 말했다.



"넌 좀 다르잖아? 넌 니 발로 회사를 나온 거고,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려고 나온 거잖아? 김지영은 복직하고 싶은 건데 너는 아니잖아?"



난 말했다.



"내가 그거 글로 쓸게 읽어봐. 어떤 느낌인지..."



                              

2018년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첫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아이를 보고는 남편과의 상의도 없이 사표를 내겠다고 팀장님께 말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단 한 번의 육아휴직도 없이 보냈다. 시댁에서 키우던 첫째를 집으로 데리고 와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어린이집과 시터 이모님께 맡기고도 일에 몰두했던 나였다. 둘째 만삭에도 필요하면 12시까지도 야근했던 나였다. 회사 남자 동료들은 내가 언제 진통이 올지 모른다고 산부인과에 데리고 갈 시나리오를 짜고는 했다고 한다.



조금의 시간도 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몸도 따라줬다. 사실 두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는 동안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일이 더 좋았다. 내가 인정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본 아이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이가 틱을 보였을 때 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팀장님의 배려로 3달의 육아휴직을 얻었다. 하지만 1개월은 연차를 쓰고 남은 2개월 중 딱 1개월 반만 육아휴직을 쓰고는 회사에 다시 복직했다. 나의 일을 맡아서 해온던 다른 여직원의 둘째 임신 때문이었다. 나의 복직 소식을 듣고는 아직 미혼인 여직원들은 말했다.


"왜요? 차장님, 그냥 다 채우고 나오세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렇게 말했던 직원들은 나의 퇴사보다 더 먼저 퇴사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며 다닐 회사는 아닌 거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82년생 김지영>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어쩌면 내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당했다고 생각하는 인사이동에 참지 못하고 자진해서 회사를 나왔다. 겉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행복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이 었다. 그건 내가 멋지게 나오고 싶은 하나의 트릭이었다. 문제는 자존심이었다. 이건 회사에 보여주는 이미지뿐만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에게도, 우리 애들을 돌봐주셨던 친정 부모님께도, 그동안 그토록 회사를 관두고 아이들을 돌보길 원했던 시부모님 앞에서도...


<82년생 김지영> 영화 속의 김 팀장처럼 멋있고 싶었다. 남자 상사에게 뜬금포 한방을 날리면서도 쿨하게 보이고 싶었던 그런...


<82년생 김지영> 속의 김지영처럼 육아의 부담을 가지고 회사를 나온 것도 아니다. 이미 7살 10살의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 10살 아이는 여태 회사 다니며 자기에게 무심했던 엄마의 잔소리가 지겹게 느껴진다. 딸이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하며 손자들을 돌봐주시던 친정 부모님은 갑작스레 회사를 관두고 집에 있는 딸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회사를 뛰쳐나온 것이 섭섭하다. 여전히 아이는 친정부모님께 맡겨둔 채 나는 매일 집을 나선다. 정해진 일은 없지만 바쁘고 싶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떳떳하고 떵떵거리고 싶다.


"오빠 기다려봐. 내가 회사 취미로 다니게 해 줄게."


내가 뱉은 나의 말에 나 자신 스스로 부담을 느낀다. 열심히 공부하고 한길만 바라보고 12년간 다녔던 회사를 나온 내가 갑자기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떤 때는 내가 번아웃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만큼 이렇게 무기력하게 한 달에 10원도 못 벌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달에 200만 원 준다는 테스트 업무 구직에 혹하기도 한다. "너 200만 원 벌라고 그 좋은 회사 나왔어?"라는 신랑의 말에 한마디 못하고 마음을 접었다. 200만 원보다도 내가 뱉어놓은 말의 자존심의 값이 더 비싼 걸까?


3만 5천 원 하는 보드를 사달라는 아들의 이야기에 엄마가 돈이 없어서 못 사줄 거 같다고 말하는데... 아이는 그냥 눈물을 그렁거릴 뿐이었다.


오늘 그 아들은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왜 회사 끊었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들을 맞았다. 그리곤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을 봐왔기에 신랑은 오랜만에 찹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와인 두병을 비웠다. 중간중간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내게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건데... 그냥 둬"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신랑은 설거지를 끝내고 멕시코와의 야구를 보다 졸다를 반복하고 있다. 공유만큼 멋지진 않지만, 그래도 자존심 강한 와이프의 멋도 없는 자존심은 끝내 건들지 않는다.


"넌 좀 다르잖아? 넌 니 발로 회사를 나온 거고,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려고 나온 거잖아? 김지영은 복직하고 싶은 건데 너는 아니잖아?"


신랑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 그냥 속 없이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영화속 김지영처럼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게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깐...





매거진의 이전글 병아리 부화부터 이별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