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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Dec 06. 2019

맏딸이 이어온 외가의 손 맛

김장 김치는 담가야 제맛?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돌아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간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하지 않았다.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는 김장을 미뤘다. 신 김치를 유독 좋아하는 엄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쌓아놓은 인심으로 친구나 지인들의 김치로 2년을 살았다. 여러 집의 김치가 상에 올라 올 때마다 지역 특색이 깃든 김치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매번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충청도식 김치가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엄마가 대전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던 2000년대에는 매년 외가 식구들이 식당에 모여 김장을 했다. 서너 집 김장을 한 번에 하니 삼백 포기는 족히 되는 김치를 담갔다. 식당 마당에 배추를 절여 놓으면 새벽 동안 할머니와 엄마는 배추를 뒤집었다. 아침이 되면 모두 모여 앉아 속 재료를 준비했고, 언제나 속을 만드는 건 할머니 또는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배합해 놓은 재료를 한데 버무리는 건 막내 삼촌이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김치 속을 넣었다. 남은 김치 속에 굴, 깨소금 등을 더 넣고 겉절이를 만들었고, 그날 저녁상은 항상 수육과 막걸리였다.     


 식당을 그만 둔 뒤에도 엄마표인지 할머니표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김치 맛에 길들여진 외가 식구들은 김장 때면 항상 엄마 또는 할머니를 찾았다. 보통은 항상 함께 했다. 그래서 2년간 우리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김치를 못 먹은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은 맏딸인 우리 엄마는 매년 이모 집과 삼촌집의 김장을 거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준비 다 해놓았으니 와서 명령만 해 달라는 이모와 삼촌의 부탁에 이맘때쯤이면 항상 대전에 다녀오셨다. 그리고 엄마의 손맛이 깃든 김치를 한 두통 들고 오셨다.     

 식당일을 오래 하시고, 손주 녀석 둘을 보느라 무릎과 다리가 성하지 않은 엄마를 모실 때면 삼촌, 이모는 조카딸들의 눈치를 본다. 이모네 김장을 하러 대전에 가시는 엄마는 동생에게는 대전 이모네 놀러 간다고 거짓말까지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주 전에 삼촌댁 김장을 도우러 다녀오시고, 지난 월요일에는 우리 집 김장을 하시고 또 이모네 김장을 하러 가셨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만 시키면 된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안다. 또 두 팔 다 걷어붙이고 쪽파에 흙이 다 씻겨 나갔는지부터 시작해서 속을 그렇게 치대듯 버무리면 안 된다고 손수 시범을 보이실 게 뻔하다는 것을.     


 3년 전 외할머니와 마지막으로 김장을 했다. 김치를 다 담가 김치 통에 넣고 냉장고를 정리하던 엄마는 어쩌니, 어쩌니를 연발하셨다. 냉장고 속에는 미리 갈아 둔 마늘과 생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쩌긴 뭘 어째, 다시 해야지” 할머니의 말씀에 우리는 통에 가지런히 담겨있는 김치는 모조리 꺼냈다. 김치 속을 털어내고 마늘과 생강을 다시 섞어 속을 넣었다. 김치 베테랑 둘이나 있었지만 저질러진 어이없는 실수에 우리는 다시 김치 속을 넣으며 참 많이도 웃었다. 그 에피소드는 김장철만 되면 항상 다시 회자되곤 한다.      


 그런 에피소드를 남겨두고 다음 해 3월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곤 김장을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꼭 김장을 해야겠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텃밭에 배추를 심은 아빠의 탓도 있다. 올 겨울 무릎 수술을 결심한 엄마는 내년 봄 겉절이 담그기도 힘들겠다. 생각하셨는지 심은 배추가 모질라다고 장에서 추가로 배추를 더 사 오셨다. 엄마의 몸이 걱정된 아빠와 나는 이것저것 많이 거들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그냥 사 먹자. 난 김치 없어도 살아. 사 먹는 김치도 맛있다고.” 투덜투덜을 연발하며 엄마 일을 거들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배추를 뒤집고 씻는 줄도 모르고 단잠에 빠졌다.     


 올해 유독 다른 건, 채소를 씻을 때부터 엄마는 나를 옆에 꼭 붙여두고는 하나하나 설명했다. 배추를 절굴 때는 반을 쪼개서, 쪼개진 쪽이 하늘을 보게 눕히고, 소금은 배추 머리 쪽에 뿌려야 한다. 쪽파는 머리 쪽에 흙이 많으니 흐르는 물에 머리 쪽부터 살살 문질러 씻어야 한다. 미나리에는 거머리가 많으니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물에 담가서 씻으면 거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하나하나 보여주시며 입이 쉬지 않으셨다.     


 속을 버무릴 때도 재료를 찾아 넣는 일은 내 몫이었다. 갓은 2센티 정도로 썰어야 하고 대파도 어슷하게 썬다. 새우젓 가지고 와라. 고춧가루 쏟아라. 액젓을 넣고 매실청도 부어라. 마늘, 생강도 넣고. 쉼 없는 엄마의 명령에 나는 속 재료를 넣었다. 엄마, 아빠는 속을 버무리시고 각자 맛을 보았다. 싱거울 땐 새우젓과 액젓을 더 넣었다. 배추 속을 넣는 것은 두 분이 하셨다. 그동안 나는 김치 통을 씻고 날랐다. 잘 버무려진 김치가 통에 담기면 남겨두었던 푸른 배추 잎을 덮고 가장자리를 잘 닦아 뚜껑을 덮었다.    

 

 엄마는 그렇게 외할머니의 손맛을 맏딸인 나에게 물려주듯 하셨다. 김치는 사 먹어도 된다고 입으로 연발하는 나는 또 그렇게 엄마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김치 킬러였던 내 동생은 택배로 받은 김치로 한 없이 좋아했다. 매콤한 걸 좋아하는 손주 녀석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풍기는 김치 냄새에 끌려 입가가 빨개지도록 김치를 한 입 가득 욱여넣었다.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온 사위는 출출하다며 냉동 밥을 따끈하게 데워 겉절이 하나만 놓고 배를 채웠다. 

    

 “음, 역시 이 맛이야.”     


 무채와 미나리, 알싸한 맛의 갓이 딱 적당한 양의 새우젓과 황태머리를 넣고 끓인 육수 그리고 몇 년 묵은 매실청과 어우러져 외할머니 손맛이 나는 김치. 이 김치 맛을 우리 아들도 계속 원할까? 나는 또 그 맛을 기억하고 흉내 낼 수 있을까? 지금은 사 먹는 김치도 맛있다고 애써 고집을 부리지만, 십 년 뒤 이십 년 뒤에도 그 고집이 변함없을까? 우리 아들도 엄마 힘들까 봐 사 먹는 김치가 더 맛있다고 하는 속 있는 놈으로 자랄까?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는 지금도 잘 익은 김치를 등갈비를 넣고 등갈비 김치찜을 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치찌개도 김치찜도 감자탕도 모두 김치가 맛있으면 누가 만들어도 맛있다고 한다. 사 먹는 김치로는 그 맛이 안나는 건 사실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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