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너를 이해한다는 것
아이를 검사해보고 싶었다.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다 보니 점점 궁금했다. 이 녀석들은 몇 유형일까? 아직 어린아이들이기에 검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짐작만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내 뱃속으로 나은 자식이지만 알다가도 모르는 게 자식이지 않던가?
짐작했다. 큰 아이는 모험심과 호기심이 충만하고 엉뚱한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니 이 아이는 분명 7 유형일 게다. 작은 아이는 나와 판박이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해서 부끄러움이 많지만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해내고 만다. 그러기에 작은 아이는 3 유형일 거다.
7 유형의 아이는 검사하기가 어렵다. 좀처럼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81문항에 체크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 아는 선생님과 함께 딱 16문제로 4가지 유형을 나누는 검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자신을 평가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모든 점수를 중간으로 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촌들이다.
어릴 적부터 친 남매같이 지내 온 친구 같은 사촌들과 함께라면 이 아이는 무엇이든 한다. 시댁 식구들과 조카들까지 함께 검사도 해보고 서로에 대해 알 기회도 되겠다 싶어 어른들이 먼저 검사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도 함께 했다. 내 계획대로 큰 아이는 긍정적으로 검사에 임해주었다.
아이와 함께 자신의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는 1 유형이 나왔다. 1 유형은 완벽주의자라는 별칭을 가진다. 내가 어릴 적 쓰고 있던 가면이 우리 아들에게도 있다고?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아이의 검사지에 표시한 문항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 때도 사촌들과 함께 해서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는 나의 관심이 분산되어 보이게 했다.
아이는 1 유형과 비슷한 점수로 7 유형도 나왔다. 아직 아이를 1 유형이라 단정 짓기는 힘들다. 물론 이 유형은 아이가 자라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유형을 찾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도 유용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에 나는 조금 더 아이에게 집중해보기로 했다.
아이의 친구 집에 생일 파티 초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한상 차려진 음식들을 다 먹고는 몇 무리를 지어 놀았다. 잘 노는가 싶던 찰나 방 한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할리갈리를 하던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는 큰 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억울함과 화가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친구에게 주먹을 날릴 기세다. 나는 급히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과 엄마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이의 행동이 눈치가 보였다.
"친구랑 노는데 그렇게 하면 되니? 사이좋게 놀아야지. 초대해 준 친구한테 미안하잖아."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고 OO가 속였단 말이야. "
네가 잘못 본 걸 거라고. 혹 그랬다 하더라도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고 타일러도 아이의 화는 가시지 않았다. 그때 따라 나온 다른 믿을만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장군이 말이 맞아요. OO가 속였어요."
편을 들어주는 친구의 한마디에 아이의 화는 금세 누그러들었다. 언제나 친구와 다투고 올 때면 아이는 항상 억울해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에 맞지 않거나, 정해진 규칙이 어겨지면 화를 냈다. 그게 설령 엄마여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는 그러면서 나는 왜 안돼? 엄마가 약속을 안 지킨 거잖아?"
말이 통하기 시작하고 논리가 생기면서부터는 말로 잘잘못을 확실히 하곤 했다. 언제나 엉뚱하고 장난이 많은 아이라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이었다. 항상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억울해하는 아이에게 나는 그래도 내 아이가 잘못했겠거니 했다. 사과를 받는 편보다는 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강하게 저항했다.
여기에 나의 잘못이 있었다. 나는 항상 아이가 한 행동의 결과만 보았던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깊게 차분히 들어준 적이 없었다. 엉뚱하고 질문이 많은 시끄러운 이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만 했다. 아이가 생각하는 원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억울했다. 물론 그 원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바로 보고 잡아주어야겠지만 아이를 깊게 바라보고 나니 보였다. 아이의 속마음이.
아직 십 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다. 무엇이든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의 깊은 곳을 잘 바라봐주는 것이다. 그냥 항상 말썽이 당연했던 아이를 에니어그램을 통해 조금 더 가만히 깊게 들여다보고 나니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이해가 되고 나니 그다음이 보였다. 이해하고 공감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니 아이가 세운 원칙 때문에 억울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아이가 보이는 성향에 따른 특정한 행동 양식을 알게 되면 아이의 강점을 이끌어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내 아이의 특별한 재능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다면, 나와 다른 아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관심사를 지지해줄 수 있다. 물론 나와 비슷한 둘째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를 쏙 빼닮아 하는 짓마다 예쁜 아이지만, 엄마를 쏙 빼닮아 절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 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지지하고 응원해 주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