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똘똘 엄마와 감성 충만 아들의 묻지 마 여행기

02 너를 이해한다는 것

by 성실애

퇴근을 30분 정도 남겨 둔 5월 어느 날, 친정 엄마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장군이가 없어졌어. 한 30분 찾았는데도 안 보인다."


할머니의 감시 아래 놀이터에서 놀던 장군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이 놀던 친구 세명과 함께 없어진 것이다.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7살이었다. 눈앞에서 놀던 손자가 사라지자 할머니는 아파트 단지를 사방팔방 돌아다니셨다. 그 몇 주 전 무릎 수술을 하셔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다리로 말이다. 동네 같은 태권도를 다니던 형아들도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5월이라 제법 해가 길어졌지만, 그래도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터였다. 팀장님께 다급함을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회사 근처에는 택시도 보이지 않고 평소면 20분 걸리는 지하철 역까지 10분 만에 돌파하는 신기록을 보이며 걸어갔다. 막 지하철로 들어서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장군이 찾았다."


숨이 턱에 찼다가 가슴 언저리에서 꽉 막힌듯한 목소리였다.

이 7살 꼬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다가 태권도에서 띠 색이 제일 높은 한 친구를 대장으로 삼고 모험을 감행했다. 그중 한 친구가 옆 단지의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학교를 향해 가자고 했단다. 우리 단지는 약 천오백 세대가 사는 대단지이다. 옆 단지 또한 천이백 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일곱 살 된 친구들이 혼자 집 앞 놀이터 이외에는 나가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친정 엄마의 메뚜기 같은 감각으로 옆 단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가 떠올랐고, 그 유치원을 향해서 아이들을 찾아가셨다. 그리고 한 미용실에서 나오는 4명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이 아이들은 할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모험이 실패했다며 할머니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다 큰 아이들처럼 모험 중 목이 마르다고 미용실에 들어가 물 동냥까지 했다니 참 기가 차다.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상태로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 때문에 모험을 망쳤다며 끝까지 아쉬워하는 내 아들과 마주했다. 또 모험을 떠나겠냐고 물어봤다. 당연하지. 다음엔 성공할 거야.



몇 주 뒤 금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그리곤 아이와 묻지 마 여행을 떠났다. 달랑 영월로 떠나는 기차표 두 장만 예매한 채 말이다. 엄마랑 모험을 떠난다는 아이는 들떠서 자기 가방에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렇게 비가 주섬주섬 내리는 영월에서 미로공원과 고씨굴 등을 둘러봤다. 내생에 처음으로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아이가 노는 동안 수없는 검색질로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기 직전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근처에 민박을 잡았다.



민박에 돌아와 시장에서 사 온 삶은 옥수수, 닭강정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젖은 옷을 말렸다. 그때 아이는 가방을 열어 자신의 보물 같은 짐을 풀어놓는다. 돋보기, 휴대용 현미경, 망원경, 줄자, 비옷, 미니 촛불, 플래시, 야광팔찌, 색종이까지 다양하게도 가방에 넣어 하루 종일 메고 다녔다.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했나? 감탄하며 사진을 하나 남겨놓았다.


하나 계획성 없어 보였던 모험심 충만한 아이의 가방을 보면서 그날 하루를 돌아보았다. 항상 계획적으로 살다 갑자기 떠난 아이와의 단 둘만의 여행이었다. 하루 종일 불안하며 정해지지 않은 숙소와 먹을거리들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의 표정이 어땠는지, 아이는 즐거웠는지 자세히 돌아볼 틈이 없었다.




이토록 다른 우리 첫째 아들과의 단 둘만의 여행은 그 뒤로도 두 번 더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언제나 묻지 마 여행으로 진행되었다. 한 번은 친구를 때린 요 놈을 혼낼 작정으로 금요일 밤 퇴근과 동시에 동해 망상으로 떠난 여행. 또 한 번은 엄마와 단 둘이 한적한 곳으로 여행 가서 하루 종일 커튼도 쳐놓고 방에 콕 박혀 있고 싶다는 감성 충만한 3.9 춘기 아들과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왔는데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열 살 아들과 들고 간 책에만 의존해야 했던 그 하루는 나에게는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항상 감성이 충만하고, 엄마와의 스킨십을 좋아하고, 항상 내 기준에서는 모험을 감행하는 이 열 살 난 친구는 가끔 나에게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 엄마는 내 나이 때 이런 기분 느껴 본 적 없어? 엄마는 내 나이 때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겠다 생각해본 적 없어?"


엄마가 너를 이해해보려고 너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건 안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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