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너를 이해한다는 것
얼마 전 유치원 부모 수업을 참가했다. 원장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자료에는 이런 질문이 있었다.
부모 역할은 ( )이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언제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아이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나는 육아서에서 답을 찾곤 한다. 그 육아서마다 한결같이 나오는 한마디가 있다. '기다림'
나는 빈칸을 이렇게 채웠다.
부모 역할은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자녀교육, 육아의 핵심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몇 번 시도하고 생각만큼 좋은 결과가 나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한다. 기나긴 시간과의 싸움을 빗대어 육아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언제나 나는 책에서 답해주는 것과 같이 기다려 온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기다림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제 머리가 커버린 3학년 큰아이는 엄마가 자기 마음을 너무 모른다고 답답해한다. 나의 답답하고 기나긴 기다림을 아이는 모른다.
이 아이와 나의 사이의 기다림이라는 시간에 대한 느낌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재미있게 놀 때는 1시간도 10분과 같이 느껴지고,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는 10분도 1시간과 같이 느껴진다. 아마 이런 차이가 동일한 시간을 보낸 기다림이라는 기간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부터 엄마는 네가 학교 갈 준비를 다 하고 학교에 갈 때까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한마디도 안 할 거야."
이렇게 아이에게 나는 네가 스스로 학교 갈 준비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표현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늦어도 9시까지 등교를 하려면 8시 30분까지는 밥을 다 먹어야 한다. 그다음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입는데 최소한 15분은 걸린다. 그런데 8시 40분이 되어도 식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켜본다. 아니 째려본다.
잠시 후 아이는 식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할 줄 알았던 아이는 방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 앞에 서서 어젯밤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야!"
결국 나는 한마디를 던지고 만다. 짧은 엄마의 외마디에 아이는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살살 걸어 화장실로 들어가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는 밤 새 지은 새집이 그대로다. 느릿느릿 옷을 챙겨 입고는 가방을 멘다. 가방은 어제 그대로 입을 해 벌리고 있다. 8시 50분 집을 나선다. 그리고 55분 '아이가 교문을 통과했습니다.'라는 톡이 울린다.
"하~~"
아직 9시에 등원 버스를 태워야 하는 둘째가 남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나오는 가사같이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려 지치고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난 오늘 아침 잘 기다린 걸까?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잘 참아주었다고 생각할까? 육아서에서 말하는 기다림이 이런 기다림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하고 약속시간보다 항상 10분 이상은 일찍 가서 기다려야 하는 엄마. 시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을 만큼 모든 것이 느긋한 이 아이. 우리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