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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Oct 13. 2020

내 맘속 쓰레기통 '모닝 페이지'

아티스트 웨이 12주를 마치며...

 지난여름 성폭력 상담사 과정을 이수하면서 책 하나를 소개받았다. 그 책이 바로 <아티스트 웨이>다.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지만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너무 말씀을 잘하셔서 그것에 감동받아 책을 주문했다.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으로 쑥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책에 있는 모든 것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2주가 지났고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7주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매주 말하는 '동시성'의 발현일 것이다.


 이 책을 활용하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바로 '모닝 페이지'이다. 창조성 회복을 위해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것을 기본 도구로 삼는데, '모닝 페이지'는 매일 아침 세 페이지에 걸쳐 의식의 흐름을 적어가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혼자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다.



 나는 12주간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내 안의 쓰레기들을 그날그날 비워냈다. 너무 사소해서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 할 고민부터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욕까지 다 쏟아냈다. 이 모닝 페이지를 쓰는 일정 기간 동안 나조차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들키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으면 내 내면에 숨어있던 악마, 검열관, 조력자들을 꺼내 놓을 수가 없다.


 무엇을 하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하고 계획을 확실하게 세워야 하는 나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더 늦어지만 안될 것 같아 바로 시작했다. 노트의 크기나 글자 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3페이지를 쓰라니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400자 원고지 3장을 기준으로 삼았다. 1600자. 워드로 한 장정도를 쓰면 대략 1600자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걸 손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원고지를 프린트해서 그 위에 썼다.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듯 힘들지 않았다. 내 속 마음이 다 드러나지도 않았고 그날그날 일기를 쓰듯 쓰고 나면 그냥 그날의 숙제를 마친 기분만 들었다.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 와야 하는데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노트 하나를 소개받았고 당장 그 노트를 구입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처음에 손으로 A5노트 세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은 힘들었다. 일주일쯤 쓰고 나니 새로 산 펜 하나가 바닥났다. 1600자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주먹도 잘 쥐어지지 않는 새벽시간, 얇은 펜을 손에 쥐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세 페이지를 채우려면 정말 많은 생각을 쥐어짜 내야만 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쓰다가 아침에 이걸 쓰고 있는 것 자체의 고통을 쓰다가 '생각이 안 난다. 무엇을 써야 할지'라는 말을  열 번쯤 쓴 적도 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일주일 즈음 보내다 보니 드디어 나의 본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 반 정도가 지나면서 나는 더 이상 머리에서 쓰라는 명령을 손이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 손 끝이 움직이는 대로 머리가 따라갔다. 내 손 끝은 내 안에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비롯해서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내가 후회하는 일 그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까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면 앞 뒤 문맥을 보며 글을 고치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손에 의지한 채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글은 문장의 완성도를 따질 겨를이 없다. 세 페이지를 채우기도 버거우니 지우고 다시 쓴 다는 것은 사치이다. 그래서 더 막말을 쏟아놓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침부터 속에 있던 잡념과 생각과 계획들을 다 쏟아놓고 나면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을 느낀다. 쓰레기를 비우고 깨끗하게 씻어 햇볕에 말려 놓은 쓰레기통처럼 작은 냄새조차 날려버린 기분이다. 이런 기분에 익숙해지다 보니 모닝 페이지를 못 쓰는 날은 볼 일을 깨끗이 보지 못한 날처럼 찝찝하다. 이미 나는 모닝 페이지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버린 거다.


 아직 나는 <아티스트 웨이>에서 말하는 모닝 페이지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예기치 못했던 내부의 힘을 접한다거나 창조성이 회복됨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12주를 다 채웠지만 나는 여전히 모닝 페이지를 내 안에 있던 감정을 비워내는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창조적인 사람이고 그 창조성이 발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 노트를 펴고 펜을 잡는다.



사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모닝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쓰다가 중간에 아이들 때문에 멈추게 되는 날 도 있고, 아침잠을 못 이겨 모닝 페이지가 이브닝 페이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의식의 흐름을 쓰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쓰다 중단되어 남은 페이지를 나중에 이어 쓰는 것보다는 한 번에 이어서 세 페이지를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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