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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Oct 22. 2020

실내화를 신었다

집안일의 끝을 위한 요령 

 회사를 관뒀다. 집에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집안일들이 많이 보였다. 집안일이라는 게 끝도 없어 보였다. 일어나자마자 세탁기를 돌려놓고 아이들 아침을 챙겨 먹여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세탁기가 주인님을 부른다. 다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이라도 볼라 했는데 벌써 점심이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돌아온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나마 숨 좀 돌리던 시간마저 사라졌다. 그나마 친정엄마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안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나였다. 하지만 엄마가 이모 댁에 가신 며칠은 엉덩이 한번 의자에 붙일 겨를이 없었다. 왜 일이 끝나지 않는 거냐고 그 답답함을 맘 카페에 올렸다.



14년 직장생활을 내려놓은 지 1년이 넘었어요.

그래도 그동안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여전히 살림에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요.

이번 주 엄마가 이모님 댁에 가셨어요.

애들의 개학 연기 소식과 함께 멘붕이 와서인지...

그간 '코로나 때문에'라는 핑계로 살아온 몇 달이 돌아봐지더라고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내 일도 좀 하고 책도 제대로 좀 읽고 그래 보자. 다짐하고 제 책상 정리까지 하고...

그랬는데...


오늘 눈 뜨자마자 애들 아침 차려 먹이고,

검은 빨래, 흰 빨래 나눠서 돌리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그러니 점심때가 오고

볶음밥 해서 먹이고

또 설거지하고

애들 밥 먹은 자리는 왜 이리 더러운지

바닥 한번 걸레질하고 나니

반나절을 훌쩍 넘긴 시간이네요.


아직 세수도 못했는데...


정말 회사 다닐 땐 일 잘하는 사람이 살림도 요령껏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오만이었어요. 저의 오만을 반성합니다. ㅠㅠ



시간이 지나면 요령이 생긴다는 말부터 반성하고 있는 나의 글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는 말까지 다양한 댓글들이 올라왔다. 살림에 요령이 생기기는 하는 걸까? 


사실 같이 사는 친정엄마는 쓸고 닦는 게 일이다. 냉장고는 일주일에 한 번은 정리하시고 '빨리 먹어 치워야지'라는 말을 반복하신다. 내가 아이들과 있을 때는 삼일에 한번 정도만 돌리는 빨래를 엄마는 매일 같이 색을 분류하고 수건은 또 따로 해서 빠신다. 매 끼니 밥을 차리시고 컵 하나 설거지 통에 그대로 두신 적이 없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일이 모두 오전 몇 시간 안에 끝난다. 그리고 오후 시간에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신다. 엄마는 늦깎이 고등학생이다. 육십 년을 살아온 엄마에게는 살림 체질과 그에 알맞은 요령이란 게 생긴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게으르고 싶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으니 나는 내가 못하는 일에 대해 요령을 피우기보단 무언가 나만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실내화를 신었다. 깔끔한 엄마와 살다 보니 나도 맨발로 바닥에 밟히는 먼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먼지에게도 뭉칠 시간이 필요하다 했던 이적 엄마 박혜란 님의 말을 떠올리며 바닥의 먼지나 과자 부스러기를 알아채지 않기로 했다. 빨래 건조대는 행거처럼 이용한다. 빨래를 돌려서 널어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 건조대에서 내려 입는다. 아이들의 옷도 바로바로 꺼내 준다. 그렇게 몇 달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입는 옷과 안 입는 옷이 구분이 될 거고, 계속 장롱 속에 머무는 옷들은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간혹 샤워 후 손 닫는 곳에 수건이 없어 당황하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다. 빨래 건조대의 공간 마련을 위해서라도 수건은 때 맞춰 걷는게 필요하다. 수건을 접는 일은 다행이도 아이들도 잘 할 수 있는 만큼 쉽다.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땐 대체로 한 그릇 음식으로 준비한다. 꼭 일품이 아니어도 하나의 접시에 반찬을 조금씩 담는다. 세 칸으로 나눠진 반찬 그릇이 유용하다. 자주 먹는 반찬이 담긴 그 그릇은 매 끼니마다 냉장고 안과 밖을 오간다. 이제 4학년이 된 큰 아이에게는 라면 정도는 끓일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다독인다. 아이에게 라면 끓이는 법과 달걀 프라이 하는 법 그리고 얼마 전에는 김치볶음밥 하는 방법을 전수했다. 나때는 그 나이면 친척 동생들 다 불러 놓고 떡볶이도 해주곤 했다며... 위험하지 않게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깔끔쟁이 엄마와 같이 산다. 왜 정리 정돈하지 못하고 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냐는 잔소리를 평생 듣고 있다. 내가 둔 그 자리가 제자리인데 엄마가 치우고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엄마도 조금씩 마음을 내려두고 계신다. 부엌이며 화장실 찌든 때를 두지 못하고 뜨거운 물로 불리고 락스를 자주 쓰는 엄마를 위해 스팀청소기를 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을 닦아야 하는 엄마를 위해 로봇 걸레도 샀다. 우리는 걸레를 달고 바닥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모님 덕분에 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엄마는 벼르고 벼르다 스팀청소기에 한껏 열을 올리고 주방 세세까지 스팀을 쏘고 계신다. 나는 모른 척 노트북을 싸들고 밖으로 나왔다. 불효자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또한 그 일에 끼여 오늘 하루 종일을 청소와 씨름해야 한다. 열에 아홉 번은 엄마의 집안일을 거들지만 한번 정도는 눈 감아도 된다고 혼자 합리화를 시키며 나왔다. 매일을 대청소하다시피 사시는 엄마에게 맞출 수는 없다. 대신 나는 엄마에게도 바닥이 두터운 실내화를 권한다. 


이게 나에게 생긴 집안일의 끝을 보는 요령이라면 요령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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