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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Mar 14. 2019

499개월, 아들 입양 스토리

 프롤로그

 이 글을 쓰면서 이 글의 주인공이 되실 분께 양해를 구해야 하나 100번을 넘게 생각했다. 오늘은 사이가 좋아 '콜~'을 외쳐줄 테지만, 소심한 그분이 삐지시면 어떤 무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재미있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양해는 무시한 채 글을 적어보기로 한다.

 

 작가가 되고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감춰왔던 것들을 다 속 시원하게 까발리고 나니 남편과 아이들이 소재거리로 보인다. 또 다른 직업병인가?


  이 글의 주인공은 2019년 3월부로 499개월이 되었고, 공개 입양 10년 3개월째인 우리 집 큰 아들이다. 토목과 선배였으나 학부 때는 그냥 어영부영 얼굴만 알던 사이였다. 대학원에 가면서 그는 앞방 선배가 되었다. 그렇게 오다가다 마주치니 정이 들었고, 집 방향이 같아 함께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기를 여러 번. 코가 끼여버렸다. 아니 내가 이분의 코에 고리를 걸어드렸다.


 순진무구하기만 했던 이분은 4살이나 어린 후배가 손잡고 걷자는 말에 얼굴이 빨개졌고 우리는 꽈배기 같이 손을 꼬아 잡고 천변을 걸었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꼬여있던 손을 풀러 바로 잡았다. 한결 편한 목소리로 그분 한다는 말이 "아! 이렇게 잡는거구나? 이제 편하네 ㅎㅎ"


 처음 영화를 보던 날, "좀 힘든데 어깨 좀 빌려주면 안 돼요?"라고 하고 선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각지고 딱딱한 어깨를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던지 내 머리가 다 저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100분짜리 영화 <알포인트>를 보았다. 


 손도 잡고 어깨도 기대고 '전 선배가 좋아요'라고 편지까지 써서 보냈으나, 이 사람 묵묵부답이다. 며칠이 지나 받은 편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도 좋은 거 같아'  아! 이게 모지? 나도 좋아 사귀자도 아니고 나도 좋은 거 같다니. 성질 급한 놈이 우물을 판다고 기다리다 못해 D-day를 12월 31일이 100일이 되는 9월 22일로 잡았다. 그리곤 그날 말해버렸다.


 "선배 우리 사귀어요. 결혼할 땐 꼭 선배가 먼저 말해야 해요"


 그러나 이 말은 세월의 바람과 같이 날아가고 이렇다 할 프러포즈도 없이 4년 3개월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그분을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했음에도 드라마 속 멋진 프러포즈를 보면 괜스레 눈물이 찔끔거린다. 


 "선배, 나는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할 거야.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나중에 배신감 느껴질 거 같아."

 

 그 말을 여전히 믿고 실천하시는 우리 신랑님. 그래서 한편으론 자존심 상하기 하지만 우리가 만든 아들 둘과 그려가는 세월 속에서 여전히 사랑한다고 외치며 이 프롤로그를 마친다.

 

 자기야 내가 자기 흉보려고 이 글 쓰는 거 아니야. 세월이 지나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우리의 추억을 남겨보려는 것이야. 우리 자기는 추억을 먹고사는 사람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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