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Apr 29. 2023

오해의 미안함

섣불리 화내지 않은 다행

퇴근해서 집에 오니 큰애가 자고 있다. 오늘은 목요일. 분명 8시까지 수학학원에 있어야 하는 아이인데...

급한 마음이었지만 차분하게 살살 애를 깨웠다. "학원 안 갔어?" 물었더니 잠결에 갔다 왔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는 갔다 온 거 맞지?" 묻고 보니 바닥에 입었다 벗은 교복이 너저분하게 놓여있다.


"어디 아프니?"


" 아니"


"그래 자."


불을 꺼주고 아이의 방을 나와 식탁을 보니 아침에 먹으라고 놓고 간 버섯파니니가 접시 위에 그냥 있다. 우유도 컵도 그대로..

아침 먹고 가겠다고 해놓고 그냥 갔나 보다. 일찍 일어나 열심히 만들어 놓고 갔구먼. 그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출근길에 인스타에도 올렸는데..


안방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아침에 만들어 놓고 간 파니니는 식탁에 그대로

지금 수학학원 가 있을 시간인데 집에서 자고 있어"


남편 답장


"아침부터 잔 건 아니겠지?"


"학교는  갔다 왔데"


"다행"


"몬일 있나?

아침에 씻지도 않고 간 거 갔고"


이건 내 추측이다. 씻고 갔으면 분명 방바닥에 벗어둔 속옷이며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어야 하는데 벗어놓은 교복만 있었다.


그렇게 찹찹하고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재활용을 버리고 소고기를 구워 애들을 식탁에 앉혔다. 아주 태연하게 고기와 밥을 먹으며 엄마 언제 왔냐고 묻는다. 모냐 너? 양심도 없는 거냐?


그래서 나도 태연한 척 물었다.


"왜 학원 안 갔어? 가기 싫었어?"


"갔다 왔다니깐..."


어찌 된 일?



큰애는 학원에 다녀온 것이 맞다. 지금은 중고등학교 중간고사기간이다. 오전 수업만 하고 끝나기 때문에 학원시간도 앞당겨졌다고 한다. 학원을 마치고 4시에 집에 돌아와 잠이 든 것이었다. 아들 시간표도 잊고 있었던 엄마의 무관심이 부른 오해였지만, 알아서 학원 시간도 맞춰서 간 아들이 대견했다.


아침도 먹고 갔단다. 파니니 4조각이 있었다. 보통 작은 아이가 2조각을 먹는데 오늘은 한 조각만 먹었단다. 내가 한 조각을 먹었으니 두 조각이 남았고, 그중 하나를 큰아이가 먹고 한 조각이 남아 있었던 것.


또 아이는 아침에 샤워까지 말끔하게 하고 등교를 했다. 수건을 돌리러 세탁실에 가니 세탁 바구니에 아이가 오전에 벗어둔 옷이 들어있다. 방에 널부러 논 것이 아니라 잘 챙겨 세탁실에 가져다 둔 것인데..


아!! 다행이다 싶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얘기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던 나를 칭찬한다. 안 그랬으면 아들을 무작정 오해하는 엄마로 두고두고 꼬투리를 잡혔을 텐데.. 그리고 또 미안했다. 어찌 되었든 의심을 한 것은 맞으니깐..


설거지를 하고 잠시 밖에 나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먹으라는 말에 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큰아이를 바로 보기가 멋쩍어 작은 아이를 보며 말했다.


"이거 형아 덕분에 먹는 거야."


오히려 큰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왜?라고 묻는다.


"너한테 미안해서. 학원 안 간 줄 엄마가 살짝 오해해서 사과하는 의미"


"엄마는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아니.. 그니깐.. 네가 지각을 했으면 했지 이유 없이 학원을 안 가는 애는 아니잖아."


"그니깐"


" 근데 학원 갈 시간에 자고 있으니 엄마는 오해보다는 무슨 일 있나 걱정했는데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그~~"


쌍쌍바 하나를 둘로 쪼개며 태연하게 돌아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직과 완벽 사이에서 고민했던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