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김밥을 직접 싸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김밥 재료 세트를 고르고 한두 가지 재료만 따로 구매했었다. 김밥 세트는 십 년 전, 오천 원 정도였다. 대형마트에서 달걀 한 판에 삼천 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몇 차례 세트로 사보니 마뜩잖은 것이다. 맛살은 빼도 되는데 대부분의 김밥 재료 세트에는 맛살이나 크래○가 들어있었다. 굳이 세트 말고 필요한 재료만 단품으로 사자는 생각이 들었다. 달걀은 냉장실에 상시 있어서 김밥 김, 단무지, 햄, 시금치나 오이만 준비하면 됐다.
우선 김밥 김은 적당한 질김성이 가장 중요했다. 김밥 김은 여러 번 겹쳐 만들기 때문에 다른 김보다 색도 진하고 두껍다. 김밥을 말 때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김밥 색 구성에서 노랑을 맡은 건 단무지와 달걀이다. 처음에는 노랑 김밥 단무지로 샀다. 그러자 미식가 남편이 신맛이 너무 강하다는 평을 했다. 김밥은 여러 재료의 맛이 한 번에 느껴지는 음식인데 특정 재료의 맛이 너무 강한 것보다 균형감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후 신맛이 덜한 무색소 단무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달걀은 전편 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김밥 열 줄 기준으로 네 개를 사용하는데 설탕을 살짝 넣어서 달콤함을 끌어올린다.
이제 빨강을 담당하는 햄. 김밥에 들어갈 햄은 칼질에 자신이 없어서 세로로 열 줄의 칼집이 나 있어, 쓰기 편해 보이는 제품으로 골랐다. 그런데 숯불구이 향이 입혀져 만들어진 김밥 햄 특유의 인공적인 느낌이 너무 강해서 거슬렸다. 햄의 굵기도 워낙 가늘어서 김밥을 씹을 때 식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지인에게서 목○촌에서 나오는 소시지나 햄이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목○촌 주부 9단 김밥 햄'을 사게 됐다. 돼지고기 함량이 높아서 일단 합격! 햄 같은 가공육은 제조하면서 생선 살이나 전분 등을 첨가하게 된다. 나는 고기 함량이 낮은 가공육일수록 찰기가 부족하며 조잡한 맛이 있다고 느낀다. 목○촌 김밥 햄은 직사각형에 격자무늬가 새겨진 통으로 된 햄이라 일일이 나눠야 한다는 수고가 있다. 하지만 아이가 먹을 김밥에 넣을 햄은 더 얇게도 자를 수 있고, 굵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김밥에서 초록을 담당하는 시금치는 손이 느리고 채소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내가 준비하기 번거로운 재료다. 집 김밥 싸기 도전 초기에는 뜨거운 물에 데친 후 차가운 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짜면 바로 속 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간이 뱄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후로 시금치 한 단 기준으로 국간장은 밥숟가락 한 큰술 조금 안 되게, 빻은 마늘은 티스푼으로 하나 넣어 조물조물하는 걸로 바꾸었다. 시금치 무침도 잘 먹는 가족을 위해 김밥용과 반찬용으로 나눌 때도 있다.
오이가 제철이라 가격이 괜찮을 때는 속 재료로 준비하기도 한다. 오이 속은 수분이 많고 물러서 속을 뺀 나머지 부분만 사용한다. 오이에 굵은소금을 묻혀 닦고 물로 씻어낸다. 그리고 얇고 길게 잘라서 볼에 담아 소금을 쳐둔다. 소금이 오이의 숨을 죽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이를 속 재료로 사용할 때는 가장 먼저 손질을 해 둔다.
김밥은 한 그릇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메뉴임은 틀림없다. 가령 카레를 만든다 치면 양파, 감자, 당근을 손질하고 유치원생인 둘째 입에 들어갈 만하게 깍둑썰기해서 냄비 하나에 담아 조리하면 사십 분이 걸린다. 김밥은 밥을 짓고 재료 손질과 조리에만 오십 분이 든다. 김밥 김 위에 밥알을 깔고 속 재료를 넣어 열 줄을 말아 썰면 삼십 분이 지나있다. 손이 많이 간다는 점만 빼면 김밥은 우리 가족을 위한 맞춤형 음식이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메뉴 중 하나라 맛있게 먹는 모습을 기대하며 준비하게 된다.
다음에는 출산 전, 힘을 내기 위해 먹었던 김밥과 손님 초대용으로 만들었던 집 김밥 등 나의 특별한 순간마다 함께했던 '김밥'에 대해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