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나의 추억 저장소에 가장 핵심적인 음식임이 분명하다. 첫째를 임신 중일 때였다. 밤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김밥만 떠올랐다. 오늘 내 먹지 못한다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임신부에게도 수면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분식집, 편의점에서 파는 김밥 말고 집에서 싼 김밥이 기필코, 반드시, 정말, 꼭 먹고 싶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일단 김밥 재료 세트에 당근과 시금치, 깻잎을 부재료로 더 구매했다. 속 재료가 햄, 맛살, 단무지, 달걀, 당근, 시금치, 깻잎, 참치로 총 여덟 가지였다. 김밥이 쉽게 말릴 리 없었다. 그동안 김밥을 맛있게 먹기만 했을 뿐, 김밥 김에 밥을 너무 두껍게 깔고 속 재료까지 넣으면 말기 힘들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래도 무거운 배를 챙기며 끝까지 김밥 열 줄을 다 말아냈다. 끝내 말리지 못한 김밥들은 칼로 자를 수 없어 남편이 통으로 들고 포식자처럼 뜯어먹었다.
출산 전날에 먹었던 음식 또한 김밥이었다. 임신 기간 동안 분식이 자주 당겨서 즐겨 먹었다. 그리고 병원에 출산을 위해 입원해야 하는 시간이 촉박해서 식당 선택의 폭이 좁았고, 분식집을 택하게 됐다. 내가 손수 싸서 먹지는 못하고 김밥○국에서 김밥과 쫄면으로 출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많은 임산부가 출산 전에 힘을 내려고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내가 출산 전날에도 김밥을 먹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김밥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음식 솜씨를 타고난 것 같지 않고 요리에 큰 관심도 없다. 하지만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배달 음식을 대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손이 느린 내가 여러 가지 메뉴를 동시에 준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가장 나답게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하다 '김밥'을 택했다. 쌀을 불리고 재료를 적당한 크기와 굵기로 손질하여 조리하고 김밥을 마는 시간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러다가 열 명 가까운 인원이 우리 집에 방문하게 될 일이 생겼다. 김밥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어울릴 만한 음식을 찾았다.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 더 맛있는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떠올랐다. 지인이 선보여 주어 처음으로 먹게 된 음식이었다. 방울토마토는 매우 대중적인 데 반해 평소에 선뜻 구매를 안 하게 되는 묘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김밥에 곁들일 반찬처럼 내놓은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는 상큼하며 가벼운 느낌이 드는 음식이었다.
그날 우리 집에서 함께 한 손님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Y가 제일 먼저 내가 만든 집 김밥에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얹어서 먹기 시작했다. 의외였지만 함께 먹으면 궁합이 더 좋아지는 음식이었나 보다. 엄청 맛있다며 나에게 찬사를 보냈다. 다른 손님들도 그 얘기를 듣더니 우르르 유행처럼 김밥에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얹어 먹었다. 동서양의 만남은 이럴 때 쓰는 말이기도 할까.
집 김밥은 굳이 다른 메뉴와 함께 먹지 않아도 단품으로 충분히 씹는 맛을 즐길 수 있고 포만감까지 느껴지는 음식이다. 2014년에 처음 집 김밥 싸기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도 김밥은 자주 우리 집 식탁에 오르고 있다.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흐른 시간 동안, 내 추억 저장소에 있는 '김밥'은, 엄마의 사랑과 격려가 느껴지는 매개였고 '임신'이라는 삶의 터닝 포인트에서는 향수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을 위한 '사랑, 응원, 추억'의 외향을 띠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그렇게, 우리 곁에 김밥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