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카드 한 장에서 시작된 나의 독서 인생

by 권성선


“이런 대출카드, 본 적 있으세요?”

요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는 회원증을 꺼내 바코드를 찍는 게 당연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그 시절의 '수기 대출카드'가 눈에 선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 있던 그 작은 카드 한 장. 그 아래 내 이름이 새겨지길 바랐던, 조그만 바람 하나로 시작된 독서 인생이 있다.


나는 두메산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넷플릭스도 없던 시절.
밤 열두 시가 되면 지상파 방송에서는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화면 조정 시간이 찾아왔다. 그건 텔레비전이 "잘 자요"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가장 큰 오락은 내게는 ‘책 읽기’였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던 책들은 대부분 외삼촌이 남기고 간 철학책이나 사회과학 서적들이라 어린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세계였다. 그 무렵의 나는 정말 '책이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마을에 공공도서관이 생겼다.
학교 끝나면 운동장 대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말 그대로 '하교길'이 도서관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책장 사이에서 맡았던 그 특유의 책 냄새와 서가의 먼지 냄새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곧 나만의 목표가 생겼다.
‘새로 들어온 책의 대출카드 첫 번째 칸에, 내 이름을 제일 먼저 남기자.’

이름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며, 나는 누군가의 뒷자리를 따라가던 독자에서 누군가의 앞자리에 이름을 남기는 독자가 되었다. 그렇게 회원카드 한 장, 두 장... 장수가 늘어날수록, 내 마음 한편에 자라는 부심도 커져갔다.

내게 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외롭고 고요했던 시골 유년시절의 '친구'였고,
세상을 향한 창이었고,
어쩌면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들여다봐 준, 첫 번째 상담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책과 평생 친구를 하기로 했다.
누군가 내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 시절, 책이 먼저 나를 친구 삼아 주었거든요."


363322344_825512375482800_7052818795934066359_n.jpg?stp=dst-jpg_e35_tt6&cb=30a688f7-fa102a98&efg=eyJ2ZW5jb2RlX3RhZyI6InRocmVhZHMuQ0FST1VTRUxfSVRFTS5pbWFnZV91cmxnZW4uNDY4eDgzMi5zZHIuZjI5MzUwLmRlZmF1bHRfaW1hZ2UifQ&_nc_ht=scontent-ssn1-1.cdninstagram.com&_nc_cat=100&_nc_oc=Q6cZ2QHOsXROa0byyOkS7Pxytqrvy4IU6hI_qiRBjNuUGXrbPi935YT2Tacq1e1JLyfawY4&_nc_ohc=DsKJHTiJWO0Q7kNvwGIhIfa&_nc_gid=ep0JaemVsKcp6ZzhU1CI8g&edm=AAGeoI8BAAAA&ccb=7-5&ig_cache_key=MzE1NjAwNzMzMzM1NjYxMDA5Mw%3D%3D.3-ccb7-5-cb30a688f7-fa102a98&oh=00_AfHT8feX9k4OvVJbUyyGR7b2sPEiYH87t1hdZgd_S52qhg&oe=67FC69F5&_nc_sid=b0e1a0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기 속 물과 마음의 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