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는 기와집이었다. 아랫채와 윗채로 나뉜 집에서 윗채는 우리가, 아랫채는 세 들어 사는 이들의 몫이었다.
직업군인, 공무원, 다방 아가씨, 초등학교 선생님, 다섯 살짜리 딸을 둔 부부까지 작은 마당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의 사는 냄새가 뒤섞여 흘렀다.
아랫채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분주한 하루를 살아냈다.
직업군인 아저씨는 아침마다 군복을 입었고, PX에서 챙겨 온 라면 박스를 들고 들어오곤 했는데 가끔은 우리 집에도 한두 봉지씩 내어주셨다. 그 라면은 다른 데서 먹던 것보다 훨씬 짜고 진했지만 PX의 냄새가 함께 배어 있는 듯해 괜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공무원 아저씨는 늘 정장을 입고 조용히 출근했고, 딸아이를 둔 부부는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아랫채가 온통 울음으로 뒤덮이곤 했다.
다방 아가씨는 늘 조용했다. 긴 머리를 느리게 빗었고, 입술을 무겁게 누른 붉은 립스틱이 그녀의 유일한 색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유난히 부엌이 조용했다. 외할머니가 된장국 대신 미역국을 끓이셨고, 그 냄새가 집 안 가득 번졌다. 나는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그 냄새를 맡으며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나중에야 들었다. 그날, 아가씨는 아이를 지우고 돌아왔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날의 미역국 냄새가 왜 그토록 깊고 아련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과 청송을 오가는 고속버스가 막 생기던 무렵, 외가는 작은 여관처럼 변해갔다.
기사 아저씨와 안내양 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렸고, 어느 순간부터 외할머니가 그들의 아침과 저녁을 차려주게 되었다.
하루 두 번의 밥상은 이제 외할머니의 몫이었다.
“이런 밥상은 서울에서도 못 먹을 거야.”
기사 아저씨는 종종 그렇게 말하며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웃었다.
안내양 언니는 조용히 밥을 먹었고, 식사가 끝나면 방으로 들어가 잠시 누워 눈을 붙였다.
그 방의 요를 걷고 청소를 하는 일은 종종 내 차지가 되었다.
걸레를 들고 속소 바닥을 문지르면 먼지보다 먼저 마음이 닦이는 것 같았다.
가끔 그들이 남기고 간 잡지를 몰래 펼쳐보기도 했다. 화려한 표지 속에는 알 듯 말 듯한 그림과 글들이 가득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자꾸만 그 페이지를 넘겼다.
그 잡지를 보며 나는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고, 몰래 보는 일에는 늘 조금의 죄책감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그들이 식사를 할 때면 안방을 내어줘야 했고, 나는 그 방의 가장자리에 살짝 앉아 숟가락을 놓거나 밥그릇을 나르기도 했다.
상 너머에서 들리는 어른들의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로 가득했지만 나는 말보다 표정과 숨결로 그 분위기를 읽으려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잡지 속의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나는 그 부엌과 그 밥상에서 배운 셈이었다.
외할머니의 손길, 말없이 내어주던 안방, 설거지를 마친 뒤 조용히 등을 돌리던 뒷모습.
그건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이었고, 나 역시 그 시간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일상이었지만 그때 이미 외가의 가세는 기울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믿고 동업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설계도를 이미 그려 두었던 이층 양옥집은 결국 그림으로만 남았다.
막내 외삼촌의 방은 조용한 세상의 문턱 같았다.
그 방의 유리문 책장 안에는 ‘저 흘러가는 구름아’ 같은 세로 쓰기 전집이 줄지어 있었고, 나는 두꺼운 가정백과사전을 꺼내 들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그것이 어린 나에겐 가장 재밌는 놀이터였다.
네모난 박스 속엔 피아노 선율이 담긴 카세트테이프가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단정해지는 것 같았고 조금은 고상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 들었던 곡이 ‘소녀의 기도’와 ‘은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책상 머리맡엔 신동아 잡지와 메모가 빼곡한 노트가 놓여 있었다. 나는 몰래 노트를 펼쳐보다가 곧장 덮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 방엔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고, 삼촌은 대체로 혼자 방에서 식사를 했다.
그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 속에 머무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방의 상을 차리고, 요를 펴고, 담배 재떨이를 비웠다. 외할머니 대신 무언가를 돌보는 일이 왠지 나에게도 주어진 몫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그 시절 어른들의 침묵과 고단함 속에서 말없이 자라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냄새와 소리와 기척들이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