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작은 나에게 시리즈] 창 넓은 집

by 권성선

판넬로 나뉜 어둡고 눅눅한 집을 나온 뒤, 나는 마침내 빛이 드는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게 된 장학관이었다. 1층은 자매들이 2층은 형제들이 사용하였다. 방 두 개와 거실 하나, 작은 부엌과 욕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단정했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숨결 같은 따뜻함이 고요히 감돌았다.


나는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와 방을 함께 썼다. 방 안에는 내 키보다 큰 창이 있었는데, 그 창으로 매일 아침 햇살이 가득 흘러들었다. 햇살은 이불 위로, 책상 위로, 그리고 때때로 말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위로도 고요히 내려앉았다. 마치 삶을 쓰다듬듯, 조용히 안아주듯 그렇게 다가왔다.


장학관에서의 하루는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달랐다. 햇살에 눈을 뜨고, 집다운 집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존엄을 세워주는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묻고, 반찬을 나누었으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천천히 사람이 되어갔다.


새벽이면 발걸음은 늘 교회로 향했다. 설교가 끝나면 장의자에 그대로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게 해 주세요.”

기도는 목소리로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히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나 자신을 붙드는 작은 숨결 같았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 집사님이 옆에 두었던 쇼핑백을 조심스레 건네주셨다. 그 안에는 냉동실에 바로 넣어두고 쓸 수 있도록 정갈하게 나눈 다진 마늘, 김치,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이 담겨 있었다.

“먹어라, 잘 챙겨 먹어야지.”

그 말이 반찬통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새겨져 있는 듯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정성’이라는 것을 배웠다. 낯설었지만 따뜻했고, 처음이었지만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듯 익숙한 온기였다.


햇살이 깃든 집에서는 작은 것들이 모두 소중해졌다. 오후 늦게까지 창에 머무는 빛, 함께 차려 먹는 소박한 밥상, 옥상에 올라 빨래를 널며 마주한 푸른 하늘과 바람. 그 모든 것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장학관은 교회와 가까웠기에 자연스레 아지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과제를 하러 들렀고, 누군가는 고민을 안고 와서 누워 울었다. 또 어떤 날은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고, 싱크대 앞에서 울고 웃던 이야기들이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한 장의 풍경처럼 깊이 새겨졌다.


그 시간들은 곧 삶이었다. 따뜻했고, 조용했으며,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해지는 시간이었다. 그 집에서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움켜쥐고 버티던 시간에서 이제는 마음을 열고 온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집에서 나는 비로소 사람다운 얼굴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17화천덕꾸러기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