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10년 전 오늘의 추억’을 알려줬다.
사진도 없고, 긴 글도 아니었다.
그저 짧은 한 문단짜리 이야기.
닳은 구두굽을 갈고 나서 “삶도 이렇게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썼던 글이었다.
그 문장을 다시 읽는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괜찮지? 아직 잘 걷고 있지?’
그런 묻는 듯한 목소리로.
그때의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 늘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챙기고, 바삐 일터로 향하던 그 시절.
구두는 늘 나보다 먼저 지쳐 있었다.
뒤축이 찢어지고 굽이 닳아 쇠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내 마음도 덜컹거렸다.
새 구두를 사고 싶었지만 계절마다 쑥쑥 크는 아이들 옷을 사느라 늘 긴축재정이었다.
결국 나는 구두를 수선소에 맡겼다.
찢어진 부분을 덧대고, 굽을 새로 갈았다.
단지 그것뿐인데 걸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수선된 구두를 신고 돌아오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작 맡길걸.’
그때는 몰랐다.
그 짧은 경험이 이렇게 오래 내 안에 남을 줄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한 구두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도 구두처럼 닳아간다.
매일 걸으며 매일 부딪히며 조금씩 모서리가 닳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버릴 필요는 없다.
한 번쯤 굽을 갈고, 틈을 메우고, 다시 걸어볼 수 있다면 충분히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닳은 마음을 꿰매며 산다.
때로는 용기라는 못으로,
때로는 믿음이라는 본드로,
그렇게 제 걸음을 이어 붙이며 살아간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다른 신발을 신었지만 닳은 굽 위를 걸어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하나.
예전에는 ‘고친다’는 게 예전처럼 되돌리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
고친다는 건 다시 걸을 힘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마음의 굽을 살짝 갈아 끼운다.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내일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