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찾아온 편안함

by 권성선

신혼 초부터 15년 가까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님은 늘 일하셨기 때문에 가사일을 맡거나 아이들을 전적으로 봐주실 여유가 없으셨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해야 했고, 하루하루가 동동거림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그게 참 아쉬웠다.

‘시’자가 들어가는 관계라는 게 그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다.
어머니께서 청소를 하시면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고,
청소를 안 도와주시면 또 애 셋 키우며 일하는 며느리 좀 도와주시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이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서툴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16년 만에 분가를 했다.
세상 편했다.
다시 돌아가라면 못 돌아갈 것 같다.
그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께서 넘어져 크게 다치실 뻔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혼자 시댁에 다녀왔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과일을 깎아 함께 먹고, 밤에는 어머니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같이 살 때는 그렇게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참 쉽고 자연스러웠다.
20년의 세월이 그냥 흘러온 게 아니었다.

시누이가 농담처럼 한마디했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20년 넘게 살았으면 이제 딸이죠, 뭐. 그죠 어머니?”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 웃음에 묘한 안도감이 스며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제미나이 대화하는 법도 알려드렸다.
그 시간들이 따뜻했다.

오후에는 시누이 부부와 함께 전망 좋은 카페에 갔다.
커피를 마시며 오래 묵혀둔 이야기들을 꺼냈다.
서로의 속마음도, 오해도,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나눴다.
가까이 있을 땐 미처 몰랐던 마음들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날은 어쩐지 오래된 감정의 매듭이 하나 풀리는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시집살이의 시간도 결국은 사람살이의 시간이었다.
어릴 적의 미움도, 서운함도 세월 속에서 다 녹아내렸다.
이제야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다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가야겠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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