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다섯.
그때 나는 무대 뒤에서 여전히 대사를 외우지 못한 배우였다.
리허설은 끝났고, 막은 이미 올랐다.
그런데 나는 내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엄마가 되어 있었고, 누군가는 커리어의 정점에 서 있었으며,
누군가는 결혼도 이혼도 해버린 채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서른다섯은 ‘아직’과 ‘벌써’가 동시에 존재하는 나이다.
아직 젊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벌써 늙었다고 하기엔 여전히 설레는 게 많았다.
그 모순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종종 눈물을 흘렸다.
울음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
그때 읽은 문장이 있었다.
“인생에 더 이상의 리허설은 없다. 날마다 막이 오를 뿐이다.”
한기연의 『서른다섯의 사춘기』 속 한 문장이었는데,
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
서른다섯은 사춘기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시기이자 스스로를 낳는 고통의 시기다.
나는 그때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마흔여섯이 된 나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이란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막이 오를 때마다 떨리는 마음이 있다는 건
아직 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