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동생의 완벽한 서포트 덕분에
이번 여행은 제주가 가진 동서남북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경험한 시간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
빛결이 살아 움직이는 수평선,
노을이 스스로를 태우며 붉게 번지는 하늘.
제주가 가진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풍성한 먹거리와 안락한 숙소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었던 여행.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했던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장 조용한 순간,
나는 뜻밖의 진실과 마주했다.
나는 아닌 척 웃고 있었지만
사실 깊은 번아웃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
올해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겠다고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몰아세웠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감정의 균열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흉내만 냈던 것 같았다.
숲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숲 한가운데에 머물기도 했다.
글램핑 텐트 밖으로 나무들이 흔들리고,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가 여린 숨처럼 스며들 때,
나는 비로소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숲은 걸어야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숲 속에 머무른 그 조용한 몇 시간이
올해의 나를 천천히 꺼내 보여주었다.
지친 마음, 누적된 한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무게들.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숲은 그 고백을 받아낼 만큼 넓고
한없이 너그러웠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진짜 의미는
예쁜 풍경도, 완벽한 일정도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좀 쉬게 해도 된다’는
아주 작은 허락 하나였다.
나를 위한 삶을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제주에서 받은 가장 조용한 위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가에서
나는 올해의 나를 바라보았다.
참 많이 애썼고,
참 고군분투했고,
참 조용히 무너져 있었던 시간들.
제주의 숲이, 바람이,
그리고 나를 응원해준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잠시 멈춰도 된다고.
다시 걸어가더라도
이번엔 나를 위한 속도로 가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