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지 않는 것도 버릇이다

by 권성선

신혼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뚝딱뚝딱 해내는 사람이었다.
전구를 갈고, 서랍을 옮기고, 문이 삐걱거리면 윤활제를 뿌렸다.
일을 끝내고 나면 남편을 불러 세웠다.
“짜잔.”

남편의 도움을 일부러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해낸 일에 대해 칭찬받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잘 해냈다는 확인.
그 작은 인정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도움을 받는 일이 어색했다.
부탁하는 말은 늘 마음에 걸렸고, 누군가 시간을 내주는 일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웬만한 결정은 혼자 했고, 웬만한 일은 혼자 끝냈다.
그게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결혼 23년 차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샤워기에서 물이 새면 나는 자연스럽게 수납장에서 멍키를 꺼낸다.
나사를 풀고, 새 샤워기를 끼우고, 한 번 더 조여본다.
물 한 번 틀어보고, “됐다.”
혼잣말로 마무리한다.

이쯤 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버릇을 잘못 들인 건 아닐까.

도움을 받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데, 나는 그 연습을 너무 오래 건너뛰었다.
‘괜찮아, 내가 할게’라는 말은 사실 ‘혼자서도 버틸 수 있어’라는 선언이었고, 동시에 ‘나를 돌보지 않아도 돼’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무능함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라는 걸.
함께 산다는 건 능숙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서툼을 내어놓는 일이라는 걸.
그런데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손은 멍키를 찾고, 입은 “됐어, 내가 할게”를 먼저 말한다.
아마 이건 성격이 아니라 습관일 것이다.
태생이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온 시간의 흔적.
언젠가는 샤워기 하나쯤은 “이거 좀 해줄래?”
라고 말해보고 싶다,고 썼지만

아니다.
이미 다 갈았다.
혼자서 아주 말끔하게.
결국 나는 오늘도 도움을 받는 연습 대신 글을 쓰는 쪽을 택했다.
멍키는 제자리에 놓였고 샤워기는 새것처럼 반짝인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못 배운 건 못 배운 채로 두어도 된다.
대신 이렇게 알아차리는 속도는 예전보다 빨라졌으니까.
다음번엔 정말 다음번엔 “짜잔” 말고 “해줄래?”를 먼저 꺼내보는 걸로.
아마 그때도 결과는 똑같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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