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고요

by 권성선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우리는 늘 온 가족이 함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졸음과 설렘이 뒤섞였고,

기도가 끝나면 어린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는 그 밤을 교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보냈다.

투쟁의 현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서 있었고,

경계선 너머로 경찰들과 마주했다.

그때의 연말은 늘 긴장 속에 있었고,


새해는 환영이라기보다 버텨야 할 시간처럼 다가왔다.

몇 해 전부터는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조촐한 저녁, 짧은 안부,

그리고 각자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르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 사춘기 아이는 저마다의 밤을 보내고 있다.

집 안은 고요하다. 너무 고요해서 처음엔 낯설었다.

예전 같으면 이 정적이 허전하게 느껴졌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들뜨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이 시간이 이제는 내 삶의 속도가 된 것 같다.

연말이라고 해서 꼭 특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

다만 한 해가 끝난다는 사실만이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동해로 가서 일출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스친다.

새해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음 역시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조금 미뤄두어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을 이미 충분히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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