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을 2년쯤 배웠다.
이직을 하면서 시간표가 어긋났고, 결국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그만둘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멈춰두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졌다.
설명이 어려운 갈증 같은 것이었다.
나의 에너지를 다시 채우고, 일상에 작은 설렘을 불러오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꾸 검색하게 되고, 영상이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나는 도파민을 찾듯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향한 곳이 소리와 몸이 만나는 자리였다.
가야금의 소리는 여전히 고혹적이었다.
줄 위를 흐르는 그 음색을 들으면 몸 어딘가가 조용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배우고 싶었다. 정말로.
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다.
둘 다 하고 싶었지만, 둘 다 하기엔 부담이 컸다.
이번에는 가야금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나중에’라는 말과 함께.
그 무렵,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한국무용 영상을 보게 됐다.
느린 호흡, 고요한 손끝, 선이 흐르듯 이어지는 움직임.
소리 대신 선이 말을 걸어왔다.
가야금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번에는 한국무용의 춤선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3주 전, 등록을 했고 오늘이 첫 수업이었다.
가야금을 처음 배울 때가 떠올랐다.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졌던 그 시간.
오늘도 비슷했다.
한국무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오른발, 왼발, 앞꿈치, 뒷꿈치, 호흡, 손, 시선까지.
이 모든 걸 동시에 의식하려니 내가 갑자기 아주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아기처럼 걸음을 처음 배우는 거라서 다들 헷갈리고, 다들 어렵다고 했다.
오른발이었는지 왼발이었는지 헷갈리는 게 당연하다고.
수업에 들어오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데, 늦은 시작은 아니겠죠?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늦은 시작이 아니라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뒤늦게 시작해 살풀이춤을 전수받으러 가신 분도 계시다고 했다.
그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지금 시작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은 낯설고 어설펐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새로운 도전은 늘 나를 초보자로 만든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삶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도 함께 온다.
지금의 나는 서툴고, 느리고, 자주 헷갈린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시작이니까...
새로운 도전이 참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