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을 허투로 보내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늘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앞에서는 유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걷는 시간에도 그냥 멍하니 발을 옮기기보다는 음악을 듣거나 오디오북을 켠다. 빨래를 개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은 단순한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귀와 마음만큼은 어딘가로 향해 있기를 바란다. 자투리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그 시간들 속에 언어 공부가 있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구독료까지 내며 스픽으로 매일 10분씩 회화를 연습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뇌인지, 혀인지, 아니면 마음인지 생각만큼 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매일 하는데도 제자리걸음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듀오링고를 알게 됐다.
영어는 잠시 멈추고,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일본어를 시작했다. 무료 버전으로, 하루 10분. 정말 까막눈이었다. 히라가나도, 가타카나도 생소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어로 문장을 말 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밥 주세요.’
‘물 주세요.’
‘참 멋져요.’
‘한국 출신이에요.’
몇 문장을 더듬거리며 내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문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변화였다. 그렇게 일본어를 시작한 지 벌써 150일이 지났다.
어떤 배우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시간의 공력을 믿는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그 무게만큼의 결과가 온다고 믿는다. 하루 10분은 작아 보이지만, 150일이 되면 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오늘도 의미 없이 흘러갈 수 있었던 시간들을 조금씩 모은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더라도,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나아진 나를 위해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을 충분히 잘 살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