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아니다.
명품 가방이나 비싼 옷에도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애초에 무거운 것을 잘 들지 못하는 나는 지갑도 천지갑, 가방도 거의 천으로 된 얇은 것뿐이다.
필요하면 사고, 필요 없으면 지나친다.
그래서인지 나 스스로를 욕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텀블러와 가습기는 장바구니에 잔뜩 담겨 있다.
텀블러를 하나 더 살 이유는 없는데도 색깔을 보고, 뚜껑 구조를 살피고, 무게까지 따져본다.
가습기는 더 그렇다.
열가습기인지, 초음파 가습기인지 비교하고, 매장에 서서 연기가 고르게 퍼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가습기에서 연기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흡족해진다.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안심이 된다.
세상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잠깐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를 한동안은 설명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연기는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케어받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공간이 아직 나를 상하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집을 방치하지 않았다는 증거.
버튼을 누르면 연기가 나온다.
예상한 만큼, 예상한 방식으로.
삶은 점점 예측 불가능해지는데 가습기만큼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 작은 기계는 내가 눌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성실하게 연기를 내보낸다.
텀블러도 마찬가지다.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담아두면,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식지 않는다.
중간에 한 번쯤 다시 채워야 하지만, 완전히 비워지지는 않는다.
그건 마치 지금의 내 삶 같기도 하다.
한 번에 다 잘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르지는 않게 유지하는 상태.
어쩌면 나는 이 물건들을 통해 돌봄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케어가 아니라 말없이 나에게 돌아오는 케어.
가습기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괜찮아지라고 말하지도 않고, 조금만 더 힘내보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숨 쉬는 공기를 덜 거칠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 앞에서는 나도 잠시 나 자신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텀블러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을 마시라고 재촉하지 않고, 건강해지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필요할 때마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준다.
그게 요즘의 나에게는 충분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이런 물건들 앞에서 나는 무언가를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덜 방치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완벽하게 돌보고 있지는 못해도,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는 감각.
그래서 나는 아마 텀블러와 가습기를 계속 들여다보는지도 모른다.
이것들은 내가 나를 케어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아직은 내가 케어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아주 조용한 허락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