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스포있음)
딸들이 각각 영화를 보고 와서는 하나같이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슬프다는 걸까 궁금해졌다.
영화를 볼 만큼의 심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줄거리도, 장르도 모른 채 다만 ‘슬프다’는 말 하나만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대체로 영화에서 과거는 흑백으로, 현재는 컬러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반대였다.
과거는 컬러로, 현재는 흑백으로 그려진다.
왜 굳이 반대로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질문은 영화를 끝까지 붙잡아 두는 힘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은호는〈Finding Jane〉이라는 ‘제인을 찾는 게임’을 개발한다.
정원이 “에릭이 제인을 못 찾으면 어떻게 돼?”라고 묻자, 은호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에릭의 세상은 흑백이 돼.”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에릭이 제인을 다시 찾게 되면 그의 세상은 다시 컬러를 되찾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장면이 연출의 핵심이었구나 싶어 감탄이 나왔다.
제인을 찾지 못한 에릭의 흑백 세계는 결국 제인이자, 자신이 사랑했던 정원을 잃은 은호 자신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정원이 없는 은호의 세상, 은호가 없는 정원의 세상은 이미 컬러를 잃은 상태로 현재에 놓여 있었다.
이 영화에서 색의 대비는 시간의 구분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가 만들어낸 세계의 온도에 가깝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현재가 다시 컬러로 돌아오는 순간은 단순한 시각적 변화가 아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애도한 끝에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로 돌아왔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렇게 영화는 조용히 끝난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싸이월드 배경음악 한 곡 역시 이 감정을 오래 붙잡는다.
한때 일상의 배경처럼 흘려보내던 음악이 이 영화 안에서는 사랑과 이별을 정리하는 언어처럼 들린다.
사랑은 봄비처럼 스며들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 멜로디는 엔딩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 딸들의 감상이 이제는 이해된다.
이 영화는 눈물로 슬픔을 말하지 않는다.
흑백으로 남겨진 세계와 뒤늦게 되찾은 컬러를 통해 사랑을 잃은 이후의 시간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