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나누던 사람

by 권성선

신혼 초부터 남편과 나는 사람을 초대해 밥을 먹는 일을 좋아했다.

교회 구역모임, 목장모임, 아이들 친구 엄마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시민단체에서 만난 사람들, 마을모임의 이웃들까지.

집은 늘 정돈되어 있지 않았고, 상차림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일만큼은 자주 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관계를 빠르게 깊어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걸.

그래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시장을 보고, 떡국을 끓이고, 반찬을 나눴다.

아이 손을 잡고 장을 보던 날의 사진이 남아 있다.

막내는 유난히 엄마와 장보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 그 설렘이 좋았다.

그렇게 살았다.

적어도 몇 해 전까진.

언제부터였을까.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한 건.

생업이 바빠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여러 시민 모임에서 겪은 일들이

마음을 깊이 지치게 했다.

상식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제명을 당했고, 뜻을 함께하던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를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라 상식에 준한 제안들이었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자는 말이었다. 조금 덜 무책임하자는 제안이었을 뿐인데 그 말들은 곧 문제 삼아졌고, 내쳐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꽤 깊이 느꼈다.

사람들이 특별히 나빠서라기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방식이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모임을 정리했었다.

피곤해서도 아니고 사람이 싫어져서도 아니다.

다시 그런 장면 속에 나를 놓고 싶지 않아서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물러나 있는 쪽을 택했다.

얼마 전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 관계 트라우마 있잖아.”

부정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나는 사람에게 꽤 깊이 다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미워하게 된 건 아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회복이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언젠가는 다시 사람을 초대해 밥을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처럼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고, 애써 괜찮은 사람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은 모임에 나가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 한 끼 정도는 다시 괜찮아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날이 오면 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걸을 것이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밥은 다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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