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나의 허당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징어무국을 끓이면서 무만 넣고 오징어를 넣지 않았던 날.
츨근을 하면서 "여보, 냄비에 오징어무국 끓여뒀으니까 먹어"라고 얘기하다가 순간 무만 넣고 오징어를 넣지 않은게 떠오른 것이다.
그날 나는 분명 요리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어딘가에 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요즘 집에서는 캡슐커피를 마신다.
원두를 갈아 마시는 수고도 덜고, 향이 날아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생각보다 편하다.
무엇보다 맛이 나쁘지 않다.
남편에게 먼저 한 잔을 내려주고, 설거지를 마친 뒤 나도 커피를 마시려고 다시 머신 앞에 섰다.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컵에 떨어지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맑은 맹물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남편에게 한 잔을 내려주고, 새 캡슐을 넣어야 했다는 걸.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버튼만 눌러버린 것이다.
잠깐 웃음이 나왔다가 곧 한숨이 나왔다.
이런 실수가 꼭 바쁜 날, 마음이 분주한 날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빠져나가 있을 때 생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지만 정작 지금을 살고 있지는 않았던 셈이다.
오늘 하루는 정신을 꼭 붙들고 살아야겠다.
무만 넣은 국이 아니라 오징어도 들어간 국을 끓이듯,
캡슐 없는 물이 아니라제대로 된 커피를 내려 마시듯
내가 하고 있는 일 속에 내 마음도 함께 넣으면서.
아무 일 아닌 이 작은 실수가 오늘의 나를 깨우는 신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