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가장 정서적으로 깊게 다가오는 곡을 꼽으라면 단연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참으로 묘한 노래다.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가도 어느 순간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다시 씻김굿 같은 애잔함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세상의 그 어떤 곡이 이토록 극과 극의 감정을 한 품에 다 안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AI와 함께 아리랑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을 쌓아 올렸고, 그 위로 가사를 세밀하게 입히는 작업을 이어갔다. 가사와 곡조가 정확히 맞물리는, 말 그대로 ‘내 마음에 맞는 아리랑’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아리랑, 모두를 일으켜 세우는 응원가 아리랑, 웅장한 합창으로 울리는 아리랑, 여성의 독백처럼 낮게 가라앉은 아리랑…. 버전은 끝없이 피어났다. 가사는 같아 보여도 곡조가 달라지면 아리랑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때로는 가사와 곡조가 어긋나 겉돌기도 하고, 박자가 너무 빨라 감정을 놓치거나, 가사의 전달이 어색하게 뭉개지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리랑만 어느덧 백 곡이 넘었다.
만드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 건, 수많은 곡들 사이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아리랑만 들으며 작업에 매달렸다. 차가운 기계 선율이 뱉어내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가장 뜨거운 인간의 감정을 찾아 헤맸다. 어떤 버전에서는 울컥함이 차오르고, 어떤 버전에서는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희망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그 묘한 감정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멈칫하며 귀를 기울였다.
응원가 버전을 만들 때는 ‘힘든 일 모두 다 던져버려’라는 문장이 곡조의 기세에 밀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그리움의 버전에서는 한 음만 과해도 감정이 거짓말처럼 들려 고치고 또 고쳤다. 아리랑은 조금만 욕심을 부려 덧칠하면 바로 어색해지는, 참으로 예민하고 정직한 노래였다.
아리랑은 아무나 부를 수 있지만, 결코 아무렇게나 부를 수는 없는 노래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난 소리일지라도, 아리랑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숨결을 요구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만든 수많은 아리랑 사이를 오가며 듣고 있다. 이미 완성된 곡보다, 아직 마음에 정확히 닿지 않은 곡들 때문에 더 오래 귀를 기울인다. 아마도 내가 찾는 건 ‘기술적으로 잘 만든 음악’이 아니라, 내 마음과 같은 속도로 숨 쉬는 아리랑일 것이다.
깊은 밤, 나는 아리랑을 다시 튼다. 그 수많은 변주곡 어딘가에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고 우리의 희망을 노래해 줄, 딱 맞는 한 곡이 남아 있을 것만 같아서.
https://youtu.be/E2UEng6etes?si=55dyg7ausmST2k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