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건네는 축하, 그 시간의 밀도

by 권성선

며칠 전, 우연히 영상 하나를 보았다. 연주 도중 생일 축하 선율이 흘러나오자 지휘자는 잠시 손을 멈춘다. 예기치 못한 선물에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숨길 수 없는 기쁨을 터뜨린다. 박수도, 꽃다발도 아닌 음악으로 건네는 그 따뜻한 축하에 화면 너머의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 영상의 시작은 야닉 내제 세겐이었다. 그리고 오늘, 알고리즘은 또 다른 지휘자의 같은 순간을 보여주었다. 오자와 세이지, 이어서 마리스 얀손스까지. 사람은 달랐지만 장면은 닮아 있었다. 음악을 매개로 한 관계의 온도만큼은.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건, 작년에 고인이 되신 오자와 세이지의 모습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무대를 지켰던 그는 생일 축하 연주가 시작되자 지휘를 멈추고 무대에 있던 의자로 가서 앉는다. 음악을 듣는 내내 그는 아이처럼 발을 도동 구르며 좋아하한다.그 표정은 오랜 세월 음악을 해온 거장의 얼굴이라기보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의 얼굴에 더 가까웠다.

그 장면이 유독 깊게 다가온 이유는 단순히 감동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나이까지 자신의 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동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보였기 때문이다. 성취나 명성보다 더 크게 느껴진 것은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관계의 깊이였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삼고 싶은 지표는 무엇일까. 남들보다 더 빨리 가는 것일까, 더 높이 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역량을 꾸준히 다듬으며 오래 지속하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일까.

영상 속 지휘자들은 말없이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계속 사랑하고, 그 일을 통해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안에서 다시 힘을 얻는 삶. 박수 대신 음악으로 축하받는 순간까지 도달하기까지 그들이 채워온 시간의 밀도는 얼마나 단단했을까.

앞으로도 이런 따뜻한 영상이 계속 내 앞에 떴으면 좋겠다. 알고리즘 덕분이든 우연이든 상관없이, 삶이 슬쩍 건네는 힌트처럼 말이다. 어디까지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오래 머무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용히 말해주는그 장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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