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공력이 만드는 춤사위

시간의 공력이 만드는 춤사위

by 권성선

“들어올 때는 몸치지만, 나갈 때는 황진이다.”


연습실 입구에 붙은 이 발칙하고도 희망찬 문구를 보며, 처음 무용실 문을 두드리던 날이 떠오른다. 낯선 코슈즈를 내려다보며 어색하게 서 있던 내가ㅠ어느덧 한국무용 기본 과정을 마치고 3월부터는 본격적인 ‘작품반’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몸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글로 마음을 풀고, 음악으로 감정을 건네며 살고 있지만, 정작 내 몸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늘 서툴렀다. 움직임보다 사유에 익숙했고, 표현보다 관찰에 익숙했다.

그런 내가 이 나이에 무용실 바닥 위에 선 것이다.

물론 현실의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른발이 나갈 차례에 왼발이 툭 튀어나오고, 앞꿈치와 뒤꿈치의 무게 중심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무엇보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코끝으로 내뱉는’ 그 오묘한 호흡의 리듬을 맞추다 보면, 머릿속은 이내 하얘지고 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우아한 학이라기보다는 갓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처럼 서툴고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오며 배웠기 때문이다.

글도, 관계도, 삶도...

모두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제 모양을 갖춘다는 것을.

한국무용은 단순히 동작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몸 안에 ‘공력’을 쌓는 일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바닥을 딛는 발바닥의 감각, 손끝에 머무는 시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기를 가르는 호흡의 깊이는 오직 정직한 시간만이 만들어줄 수 있는 훈장과도 같다.

지금의 엉성한 디딤새들이 켜켜이 쌓여 ‘시간의 공력’이 되는 날, 내 몸짓에도 향기가 배어날 것이다.

나는 재능보다 지속을 믿는다.

한 번의 번뜩임보다, 수백 번의 반복을 믿는다.

꾸준함이라는 가장 정직한 재능을 안고, 언젠가 무대 위에서 내가 배운 작품을 당당히 선보일 그날을 조용히 꿈꾼다.

연습실 문을 나설 때쯤, 나는 정말로 황진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설령 황진이는 아닐지라도, 내 삶의 리듬을 스스로 탈 줄 아는 가장 단단한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WeHXuVqCmfE?si=06EIvWpJ5FidnE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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