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병이 도진 걸까.

by 권성선

​며칠 전부터 자꾸만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거울 앞에 서서 괜히 머리를 묶어 올려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끝부분을 말아 쥐며 “이 정도 길이면 괜찮지 않을까?” 혼자 중얼거려 보기도 한다.
​사실 나는 헤어스타일 변화에 과감한 사람이 아니다. 자르고 나서 밀려올 후회가 두려워, 대개는 조금 더 길게 두고 조금 더 참아보는 쪽을 선택해 왔다. 내게 긴 머리는 익숙함이자 일종의 안전장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머리를 자르고 싶어질 때는 단지 헤어스타일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무언가를 송두리째 바꾸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당장 삶의 궤도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더라도, 작은 변화 하나가 내 일상의 공기를 신선하게 바꿔줄 것만 같은 그런 예감 말이다.
​머리를 자르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간편한 변화다. 가위질 몇 번이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던 지난 시간들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머리를 자르고 싶은 날은 대개 마음 어딘가에서 “이제 그만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조용한 신호가 고개를 드는 날이기도 하다.
​진짜 가위를 들기 전, 일단 AI로 만든 나의 단발머리 이미지에 대리만족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화면 속 낯선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아 보여서, 이 망설임조차 즐거운 설렘으로 변한다.
​이것이 단순한 단발병인지,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설렘인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요즘 내 마음이 한곳에 가만히 고여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싶은 게 아니라, 낡은 습관을 털어내고 조금 다른 내가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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