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안내문에서 마주한 전쟁의 그림자

by 권성선

​언제부턴가 뉴스를 멀리하게 되었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갈등과 정치적 셈법들에 지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평온한 일상을 택했다. 머나먼 땅에서 들려오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 소식도 그저 '또 누군가의 무모한 선택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무 건조한 생각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전쟁은 내 식탁 위의 밥상과는 상관없는, 화면 너머의 비현실적인 사건이라 여겼다.

​엄마에게 보낼 작은 마음을 챙겨 집 근처 서교동 우체국을 찾았다. 창구에 붙은 창백한 종이 한 장이 발길을 붙잡았다. '미국-이란 전쟁 관련 국제우편 접수중지 안내'.

​그 안내문 안에는 가나, 그리스, 나이지리아부터 이란과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나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가 오늘 보내려던 택배가 갈 수 없는 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삶이 멈춰버린 사람들. 종이에 적힌 딱딱한 지명들은 더 이상 지도가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 아래 신음하고 있는 생생한 비명으로 다가왔다.

​전쟁은 단순히 뉴스 속의 수치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릴 선물이 돌아가야 하고, 가족의 안부를 담은 편지가 길을 잃으며, 평범한 일상이 물리적으로 단절되는 고통의 실체였다. 정치적 명분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가려진 채,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이 그 참혹한 무게를 오롯이 견디고 있었다.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했던 세상의 상처가 우체국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를 직면했다.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는 짧은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전쟁이 삼켜버린 그 땅의 평화가, 그리고 끊겨버린 마음의 길들이 다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기적 같은 소망임을 다시금 깨닫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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