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인생’을 읽고

늙은 소 ‘푸구이’

by 봄빛

한 노인이 소가 게으름 피운다고 소에게 한마디 하고 있다.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며, •••, 여자는 베를 짜야하는 법. 그런데 너는 어째서 소 주제에 밭을 안 갈겠다는 거야? 이건 예부터 전해온 도리라고. 가자, 가자." 소는 쟁기를 다시 끌기 시작했다. 노인과 소는 둘 다 늙었다.
소의 걸음이 느려지자 다시 고함을 질렀다. “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펑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 소 이름이 여러 개라 궁금해 물어보는 사람에게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여러 이름을 불러서 속이는 거라고 말했다.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고 신나게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그 소의 이름은 ‘푸구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시작된다. 위화(余華)의 '인생'이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늙은 소 한 마리와 밭을 갈고 있는 노인의 입을 통해 들려주었다.

1930~40년 즈음, 중국 농촌.

노인은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구제불능이었다. 아버지의 평이 그랬다면, 마을 훈장에게서는 썩은 나무는 다듬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돌이켜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커서는 성안에 가는 걸 좋아해서 집에도 가지 않고 기생집을 드나들었고, 결국엔 도박에 손을 대었다. 망나니처럼 생활을 했다. 결국 도박꾼에게 땅문서도 모두 뺏겨버렸다.
부농은 자기 집에서 쫓겨났고, 그 집은 도박장에서 자신의 땅문서를 빼앗은 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집의 소작농이 되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아버지는 땅이 뺏긴 상황에서 변소에 빠져 죽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아내는 성안의 장인이 데려가 버렸다.
다행히 그는 아내와 자식을 팔아버리는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 노름빚으로 땅문서와 집문서가 모두 넘어간 것을 알고는 멈추었다.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는 집안을 알거지로 만든 아들을 용서했다. 대신 빚만큼 동전으로 지게에 담아 하루 종일 수차례 먼길을 걸려 보내서 갚게 했다. 그리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늦은 것이었을까?
빈한한 삶이 그에게 남았다. 그래도 그에겐 어머니와 딸이 있었다. 힘든 와중에도 딸은 그 쾌활함을 유지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와 그와 딸의 핏속을 관통하는 덕스러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아내는 큰딸이 보고 싶었던지 아니면 시집의 덕성이 묻었던지 다시 돌아왔다. 처가에서 낳은 아들까지 데리고서..

화자는 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같이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없다.”라며..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노인의 이름이 뭘까?
‘푸구이’다.

자, 다시 그의 삶으로 들어가 본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고달픔은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돌아온 아내를 비로소 아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내가 슬쩍 알려준 것이었다. 자신은 알지 못했는데 그녀를 아껴 쉬라고 하면 그녀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은 두렵지 않은 법이라고 했다. 부잣집 딸인 아내는 비단옷을 벗고 무명옷 차림으로 온종일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힘들게 일하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딸도 좋은 아이였다. 좋은 집에서 초가집으로 이사를 왔는데도 여전히 신이 난 모습이었다. 거친 음식을 먹여도 토하지 않았다. 동생을 안아줄 생각만 했다.
그러한 나날을 일 년쯤 보낸 뒤 어머니가 병이 나셨을 때, 성안에 의사를 데리러 갔다가 국민당군에 끌려가게 되었다. 먼 길을 걸어 양자강을 건너서 해방군 영역으로 들어갔다. 국민당군이 포위를 당하고 끝내 많은 인원이 몰살당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 해방군에 남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남쪽으로 싸우러 가는 해방군의 뒤꽁무니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두 해가 지난 초가을이었다.
돌아왔더니 딸은 열병에 걸려 귀머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딸은 언제나 남동생을 보살폈다. 자신의 땅을 노름으로 빼앗은 자는 해방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지주가 된 지 사 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죽기 전 그에게 자신이 대신 죽게 되었다고 울부짖었다. 사형 장면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뒷목이 서늘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 기분이었다. 집안을 망쳐버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는 그가 있었을 것이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그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대신 죽어가는 이가 있었다.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는 “우리가 또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후에 아들, 딸, 처, 사위, 손자. 모두를 잃게 되었다. 아내의 이름이 ‘자전’, 딸이 ‘펑샤’, 아들이 ‘유칭’, 사위가 ‘얼시’이고 손자가 ‘쿠건’이다.

그래도 그는 살고 있다. 외손자를 잃고 모든 가족을 떠나보낸 후 소를 한 마리 샀다. 우시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소 잡는 칼 앞에 눈물 뚝뚝 흘리는 늙은 소. 평생을 주인을 위해 일한 소의 마지막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튼튼한 젊은 소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늙었을 그 소를 샀다. 소가 늙어도 같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힘들면 소도 힘들 것이라고 하며 쉬어가기 때문이다.

좋을 때가 있었고, 어려운 때를 지나면 다시 작지만 좋은 일이 생겼다. 어려움을 겪고 난 뒤의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기쁜 일들이었다. 그 기쁨도 잠시, 가족을 잃고 비탄에 잠길 새도 없이 남은 가족을 챙기고 삶을 살아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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