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직인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공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문서에 남기는 강조점이 될 듯했다. 필명인 ‘봄빛’도 가지고 싶거니와 내가 이끌어가고 있는 독서동아리 이름인 '인문학의바다'도 욕심이 났다.
마침 매주 토요일마다 옹기를 만들러다니는 옹기마을에서 이번엔 사각도장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얼른 내 것 두개랑 가족들 수대로 옹기막대를 챙겨왔다. 가로, 세로 1.5cm 정도의 직사각형 기둥형태다. 한 면에는 이름을 다른 면에는 꽃잎을 그려 놓으라는데 어떻게 만들어 볼까 고민이 되었다.
'봄빛'은 일반적인 도장처럼 테두리를 조금 굵게 남기고 양각으로 글씨가 도드라지게 하고 싶었다. 앞 글자가 위에 있고 뒷 글자는 조금 처지게 새겨나갔다. ‘ㅁ’이나 ‘ㅇ’ 모양은 안쪽을 작게 파내야 글자를 쉽게 알아 볼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쪽을 마음내키는 대로 파면 글자가 가늘어져버렸다. 아니면 두께 유지를 위해 글자가 커져 버려 모양이 나지 않았다. 점 찍듯이 구멍을 내니 제법 그럴듯했다.
'봄빛’을 파고 나니 이제 ‘인문학의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놈은 어떻게 만들어 볼까. 글자수가 많다. 두 자와 여섯 자, 구상부터 달라졌다. 테두리를 버릴 수밖에 없겠다. 면을 반으로 나누어 한 쪽은 음각, 한 쪽은 양각으로 해서 효율적으로 구성을 했다. 음각은 꾹꾹 눌러 주듯이 모음과 자음이 겹치지 않게 띄우느라 힘이 들었다. ‘인문학’은 받침이 비슷하여 ‘ㄴ’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완성된 음각의 ‘인문학’은 귀여운 모양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의바다’였다. ‘의’자를 '인문학' 곁에 넣으려 했는데 실패했다. 양각의 ‘의’자는 크기가 커졌다. 자기 자리 삼분의 일을 벗어나고 말았다. 나머지 ‘바다’는 왜소해졌다. ‘ㅏ’는 살짝 느낌만 나게 처리했다. 좁아진 면이 ‘ㅏ’를 ‘ㅣ’처럼 보이게 했다
위 아래가 반전이 느껴지는 ‘인문학의바다’ 도장도 완성되었다. 글자모양을 스케치 했었지만, 한쪽은 크고, 한쪽은 비틀어진 비대칭이 되고 말았다.
내 이름을 새기는 것조차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도장을 파느라 들인 수고와 집중에 온 몸과 마음이 후덜거렸다. 이미 옹기막대는 너무 굳어져서 다시 도전할 수도 없었다.
한켠에서 아이들이 자기 이름 파다가 실패를 했다. ‘ㅎ’이 들어가는 곳은 더 어려웠다. 위쪽 삿갓과 아래 동그라미의 조화가 문제라 삿갓이 커지게 되어 균형이 잘 안 잡혔다.
굳어지기 시작하던 옹기막대는 딱딱해졌다. 이쑤시개로 파낼 수 있던 것이 바늘을 사용해야 했다. 양각되지 않는 부분을 한줄 한줄 긁어냈다가 테두리를 잘못 건드리고 말았다. 손아귀가 저려왔다. 손 끝에 힘껏 쥐고 있던 바늘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벌써 자정이 되었다.
옹기마을에 가지고 간다. 옹기연구소 김소장님은 아직 못 굽는다고 한다. 더 말라야 한단다. 옹기는 흙을 얇게 떼어 한단 한단 쌓아 올리는데, 이 옹기도장은 두터워서 중간에 숨구멍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구울 때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 도장을 판다는 것은 옹기를 만들 때와는 사뭇 다른 절차를 거치는 것 같다. 나를 표상하고, 나를 대신하는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마음가짐이 달라서일까.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은 사진이나 그림, 또다른 글자와 달리 만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세상에 보여지는 진짜 나는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론 가면을 쓰고 살 때도 있다. 도장에 직접 내 이름을 새기다보니 마치 그 가면을 벗어 던진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다. 도장 속에 새겨진 이름, 글씨체에까지 고스란히 나의 참 모습을 담아 놓은 듯하다. 이 도장을 찍을 때마다 나는 진실한 얼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