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결 Mar 15. 2023

문학 칼럼67(일본 문학)

하야시 후미코 '철 늦은 국화'에서 보는 돈에 파괴된 순수

[문학칼럼] 하야시 후미코 '철 늦은 국화'에서 보는 돈에 파괴된 순수

민병식


하야시 후미코(1903~1951)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글쓰기를 한 작가이다.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을 그린 ‘방랑기’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여성, 가족, 사회 문제를 그린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등이 있다.


이 작품은 19살 때부터 기생 일을 시작한 56세의 기생 ‘긴’과 그녀의 옛 애인 ‘다베’가 재회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비정함과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옛 연인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심리를 묘사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긴이 다베를 알게 된 것은, 3년 정도 관계 맺은 남자와 헤어지고 하숙집에서 지낼 때 였는데 그 당시 긴은 50에 접어들었지만 30대 후반으로 보일 만큼 젊어 보였다. 다베는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출정했는데 전쟁이 끝난 이듬해 다베가 귀환해서 긴의 집에 찾아왔을 때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 후 멋쟁이가 되어 나타나 곧 결혼을 할 것이라고 한 후 1년 남짓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다베에게서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고, 긴은 기생으로 전성기를 훨씬 넘었지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목욕도 하고 얼음 맛사지도 한다. 다베가 위스키와 햄, 치즈 등을 가지고 왔다. 그 사이 벙어리 하녀가 술잔과 접시를 내오고 다베는 긴보다 젊은 하녀에게 눈길이 간다.


다베는 긴이 여전히 아름답다며 자신의 부인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긴은 예전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다베는 옛날의 사각모를 쓴 젊은이가 아니었다. 나이들고 추한 모습이었고 다베의 표정을 보며 혹시 돈을 빌리러 오지 않았을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예감은 어김없이 맞았다. 다베는 40만엔 정도를 빌릴 수 있겠느냐고 묻고 긴은 돈 때문에 나를 찾아왔느냐고 하면서 둘은 불편해 진다. 긴은 전차 시간이 괜찮냐고 돌려 말하며 다베가 돌아가길 바라지만 다베는 갈 생각이 없다. 긴은 이웃이 신경쓰인다며 나가달라고 하고 다베는 다른 남자가 늦은 시각에 오기로 했냐며 조롱을 하며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긴은 그런 다베의 모습이 너무 추해보여 한 푼도 빌려주고 싶지 않다.


긴은 옛 연인 다베와 재회를 하기 전에는 자신이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화장을 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초라하게 변한 다베를 만나니 예전의 그리움도 사라지고, 거기에 돈까지 빌려달라고 하자 냉정하게 응대한다. 긴은 다베를 취하게 만들어서 아무렇게나 재우고, 다음날 쫓아낼 생각만 할 뿐이다. 다베는 긴보다 젊은 하녀의 싱싱한 젊음 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작품은 일본 패전 이후의 비루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전 후에  긴과 다베의 변해버린 찌든 마음을 통해 돈 앞에서 무너지는 순수함을 보여줌으로써 젊은 날의 순정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궁핍한 삶이 얼마나 사람을 강퍅하게 하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다베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긴에 대한 마음은 없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돈을 빌리는 것, 궁핍함이 그를 구질 구질 하게 만든다. 긴은  어떤가.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작품의 제목처럼 지금은 시들어가는 ‘철 늦은 국화’가 되어버렸고 마음도 시들어간다. 둘의 사랑도 추억도 좋았던 시간 들도 현실 앞에서 혼탁해진다. 돈을 빌려 가려는 다베, 빌려주지 않으려는 긴, 전쟁 후에 둘 사이에 남은 것이라곤  서로의 마음에 들어있던 순수함의 사랑이  사라진것 뿐이다.


부부나 연인이나 중심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건물의 바닥이나 기둥처럼 탄탄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사는게 더 어려울수록 그렇다. 또한 사랑을 유지하는데는 물질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과연 우리의 사랑은 단단한가. 이별을 택하기는 충격이 크고 대안이 없으니 그냥 사는 것인지 그냥 만나는 것인지, 어려워져가는 경제 현실을 바라볼 때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돈에 의해 움직여지지는 않을지, 꺾이지는 않을지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
작가의 이전글 문학 칼럼65(영미 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