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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pr 18. 2023

문학 칼럼88(영미 문학)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에서 보는 페미니즘과 양성평등

[문학칼럼]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에서 보는 페미니즘과 양성평등

민병식


샬롯 퍼킨스 길먼(1860-1935)은 미국 태생의 소설가이며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휴머니스트로 소개한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인데 1887년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다가 아무런 지적활동도 하지 말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만 하라는 휴식요법을 이행할 것을 처방받았고 그렇게 하다가 문제가 생길 것 같자 남편과 별거를 하며 지냈고 그 때문에 병이 나아 자연스럽게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런벽지’는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유행했던 문학사조로 의식의 흐름을 좇아 쓴 '초현실주의' 작품이며, 미국 페미니즘의 대표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작가인 샬롯은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당시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던 많은 여성들에게 시행된 잘못된 의사의 처방인 휴식 치료법을 본인이 경험하며 오히려 더 증상이 악화되었던 것이 힘들어 처방을 받은 대로가 아닌 좀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우울증을 극복한 샬롯 퍼킨스 길먼,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총 열한 번째 일기로 이루어진 이 일기의 주인공 여성의 남편의 이름은 '존'으로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의사다. 남편과 '나'(주인공은 이름이 없이 '나'로 표기된다)은 주인공의 산후우울증으로 요양을 위해 삼개월 간 별장을 빌린다. 별장은 아름답지만 몇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오래된 저택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과 부유한 환경을 보여주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상 증세를 느끼지만 남편은 나의 말을 무시한다. 의사인 자신이 잘 안다면서. 유명한 의사인 나의 오빠마저도 똑같이  신경 쇠약일 뿐이라며 모든 행동을 금한다. 남편은 주인공의 글쓰기도 금지하고 바깥을 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것도 해롭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일도 금하고 휴식만을 강요한다. 나는 사촌 들이라도 초대해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남편은 이것도 금한다. 남편은 나를 가두어 놓고 다른 사람과 교류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자신의 그런 행동이 나를 위해서라고 포장한다.


결국 나는 누워서 벽지를 보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다. 하루 종일 벽지만 보고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좀 이상한 벽지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 벽지에서 기괴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벽지의 바깥 무늬 안쪽에서 어떤 여자가 구부정하게 기어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밤에 방 안에 달 빛이 비출 때는 벽지 무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점점 두려운 느낌이 강해지자  남편에게 별장을 떠나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을 하나 남편은 별장 계약 기간이 3주나 남았다며 나의 말을듣지 않는다.


감옥 같은 별장에서 나는 점점 신경이 예민해 지지만 남편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구속만 하려는 남편에게 미칠 듯이 화가 나지만 사랑해서 그런 것이려니 이해하려고 애쓴다. 결국 나는 날이 갈수록 벽지를 관찰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서 더 이상하고 더 기괴한 것들을 보게 되고 결국 벽지를 뜯어내고 방안을 자유롭게 기어서 돌아다닌다. 나중에 그 장면을 목격한 남편이 기절하자 벽지에 그려져 있는 여자처럼 기어서 남편을 넘어 간다.

작품에서 벽지를 찢는 주인공은 남편이 더 이상 자신을 데리고 나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삶이 결혼으로 구속되면 애완동물처럼 살아야 했던 19세기,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의식과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산후우울증의 심약한 아내에게 행해지는 가스라이팅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절정판이라고 불렸다. 남편이 제공하는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만 머무르기를 강요당하던 여성이 그 울타리가 제공하는 것이 안락한 것만은 아닌 고통스럽고 부당한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닫고 평생을 그 안에서 갇혀 살기 보다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남성과 동등한 개체로써의 인간의 삶을 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와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써 우뚝 선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현대사회는 양성 평등의 사회이다. 양성평등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남자와 여자를 서로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여 똑같은 참여 기회를 주고, 똑같은 권리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성에 구분없이 존중받고 대우받을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이 나오고 역차별이 나온다. 갈등으로 이어지고 서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침을 튀겨가며 '한남'이니 '꼴페미'니 하는 서로 비하하는 발언들이 난무하다. 결론이 없다. 우리는 갈등을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각으로 바꾸고  바라봐야 한다. 남성, 여성이 아니라 내 부모, 내 누나, 내 오빠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남, 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생각의 바꿈이 필요한 세상이다.


사진 전체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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