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예찬(禮讚)

휴먼 에세이1

by 한결

들꽃!


평범하여 그리고 너무 평범하여 기억을 두지않는 어휘이다. 너무나 흔하다는 생각이 초래한 익숙한 꽃이 되었다. 장미처럼 정열적이지도 않고 칸나처럼 화려하지도 않으며 수선화처럼 우아하지도 그렇다고 백합처럼 하얀 자태로 치장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들꽃만큼 포근하다는 꽃은 드물다. 뭉게구름처럼, 대지의 어머니처럼,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의 누이처럼 푸근한 까닭이다. 그리고 그 꽃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내 안에는 그리움이 살고있다. 동물의 향수는 향수가 아니지만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들 때까지 하루종일 꼭 붙어있다. 언제부터인가 숲의 공기에서 떠나버린 일상은 들꽃이 주는 포근함에서 벗어나 있고 그리움이 짙게 오르는 찰나들에서 그 아쉬움이 짙어진다.


살아있는 것들의 몸부림은 대지의 어머니 치마에 싸이고 싶은데도 들꽃이 주는 아련함은 아려가고 있다. 매일같이 따라다닐뿐만 아니라 수시로 툭툭 가슴을 건드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도록 충동질한다. 어느 곳으로의 여행이 일상을 탈출하는 것이라면 그 마음의 굴뚝에 올라서 바람을 따라가고 싶다. 서성거리며 보도블럭에서 피어나는 풀처럼 삶의 방향은 늘 그대로이다.


마음 속으로 여행과 들꽃에 대한 그리움을 책상에 놓고 씨름을 한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따라가 본다. 그리움이란 녀석은 봄이면 개망초 가득한 들길로, 여름이면 푸른 산과 녹음 우거진 둘레길의 모습으로, 가을엔 코끝을 살살 건드리는 고소한 낙엽타는 냄새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이면 들판 위의 하얀 발자국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에 흔적을 새기는 발자국처럼 사계절 내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창문을 열었다. 들판의 냄새는 없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햇살이 감미로운 음악을 타고 날아간다. 커피를 마시며 비어진 가슴을 넓히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런가!

도시의 삶은 물질이 만들어준 문명의 혜택을 비롯하여 수만가지 편리함을 안겨주었지만, 나의 허기진 가슴을 모두 채워주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일하고나서 지친 몸과 마음을기댈 곳이 없을 때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쉼에 대한 막연한 욕구가 밀려올 때면 어김없이 그 곳을 생각한다.


여전히 들꽃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원한 바람과 흙 냄새가 있는 곳 말이다. 가슴의 추억을 저당잡힌 노을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면 길가 구석진 곳에 피어있는 들 꽃 한 송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던 곳이다. 가끔은 아주가끔은 나르시즘에 빠져도 좋다는 생각이 이를 즈음이면 들꽃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래서일까! 늘 같은 곳을 서성이는 내게는 우울한 날의 들꽃은 마음의 우산이 된다. 보고싶은 것들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 들을 보고 싶으면 그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리움의 장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흙 길과 시냇물, 돌멩이, 온갖 나무들, 그리고 참 편안하게 들 꽃을 볼 수 있다. 마치 아무때나 찾아가도 반겨주는 고향집처럼 일상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매력이다. 인위적으로 심은 화단이 아닌 저절로 씨방에서 날아가 씨앗이 뿌려지어 길가에, 비탈에 그리고 들판에 듬성 듬성 핀 정겨움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풀들과 풀들 사이로 살짝 고개내민 민들레나 나리꽃을 보면 향기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생명력이 경이롭기까지하다. 대견하다는 말로 다 이르지 못한다. 아니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많은 이름을 붙이고 싶어도 붙일 수 없는 그 포용력으로 나는 어머니와 같은 들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꾸미지 않은 순수,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예쁘게 홀로 피어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가는 때묻지

않은 순박함은 잃어버린 것들을 챙겨준다. 알고 있는 어휘를 다 모아도 형언할 수 없어서 좋다. 그냥 예쁘다.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사랑의 로망이다. 미완이 두는 여백을 꿈꾼다. 너 들꽃이다.


삶은 외로움과 허무함과의 싸움이기도하다.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소외감이 밀려와 의지할 곳 없을 때 세상 살이가 다 똑같거니 하면서 스스로를 자위해보지만 그 위로가 통하지 않을 때 흐르는 강줄기가 안내하는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풀들의 소근거림과 나무들의 합창, 어쩌다 만나는 딱새 들과 눈을 마주치고 들꽃을 닮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잡고 걷는 상상을 한다.


둘레길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펜션의 불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하고 노랑 빨강 총천연색 가로등 불이 길을 비춘다. 풀벌레의 울음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는 밤, 여전히 들꽃은 제 자리에 있다. 계곡의 물비린내가 코를 자극하고 흐르는 물소리가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시간, 커피 한 잔의 그윽한 향기와 싸늘한 공기, 자연의 밤이 이끄는 적막함 속에 눈을 감고 있노라면 밤하늘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새벽녘이면 예쁜 별꽃들이 피어나 인사를 하겠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지극히 평안한 쉼을 제공하는 아름다운 곳을 떠나며 천천히 눈을 뜬다. 늘 빡빡한 일상에 얽매여 시계의 초침같이 살아가는 우리와는 반대로 들꽃의 삶에는 시간표가 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으로 몸을 맡기고 비가오면 오는대로 다 받아들일 뿐, 피고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바쁘고 조급한 일상이지만 들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일상의 눈을 뜬다.

조그만 바위 틈으로 귀여운 표정을 짓고는 아무 말 없이 새침 떼는 들꽃을 보고싶다. 5월의 신록이 싱그러운 그 때처럼 하얀 구름을 담아 흐르는 개울가에서 풀냄새가 그렇게 좋았던 꿈이 되살아나는데 아직도 들꽃이 보고 싶다. 달고 시원한 물 한잔의 에너지를 주는 삶의 휴게소이다.

그림 문길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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