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매미 아니랄까봐 오늘도 악을 쓰며 운다. 한 두 마리가 아닌 끝없는 이곳 저곳에서 끝없는 도돌이표의 울림이 한창이다. 그러나 귀가 조금 성가시긴해도 매미의 울음소리 없는 8월은 허전하니 울어줘야 제격이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가로수 어딘가에 숨어 '촤르르 촤르르' 사정없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암놈을 부르는 숫놈의 처절한 외침을 들어야 여름답기 때문이다. 난 이처럼 맹렬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어 본적이 없다. 이 우렁찬 구애를 위해 녀석은 수년을 땅 속에서 어둠과 싸우며 지내 왔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녀석을 보았다. 바람에 날렸는지, 혹시 실수로 떨어진 것은 아닐까하고 가까이가서 보니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며칠을 살았을까. 그리 원하던 짝짓기나 했을까. 갑자기 녀석의 삶이 궁금해진다. 매미는 길게는 십여 년의 수명 을 사는데 삶의 대부분을 땅 속에서 산다. 그것도 성체가 아닌 유충으로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매미로 살기위해 나무로 올라가는데 그 삶이 일주일에서 길어야 이주일이다. 매미의 일생 대부분은 결국 애벌레와 번데기의 삶인 것이다.
거리에 누운 모습이 애처롭고 허무하지만 한편 장렬해보인다.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생에 최선을 다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매미의 사체를 한 예닐곱 걸음 지나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냥 두면 지나가는 행인 들의 발에 밟혀 찌그러지고 파리 떼가 꼬일지도 모른다. 비라도 온다면 마지막 가는 길까지 수몰되는 꼴을 같은 남자로써 차마 두고 볼 수가 없다. 결국 길가 가로수 밑에 조금 땅을 파고 생엔 좀더 오래 살라는 바램을 담아 묻어주었다.
매미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다. 그 알이 자라면 애벌레가 되고 그 애벌레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땅속에서 수 년을 보내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된다. 땅속에서의 생활 중 또, 나무 위에서 얼마나 많은 천적 들을 만났을까. 수많은 죽음 위기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 았으니 매미가 그렇게 악을 써대는 것도 당연하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 자신을 대신해 내년 여름에 울어 줄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종족번식의 본능이 "내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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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고, 정신 사납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매미의 생을 이해한다면 그 정도 울음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는게 마땅하다. 어린시절의 고향마을에도 매미는 많았지만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있으니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방에서 울어대니 어디에서 우는지 조차 방향을 잡기 힘들다. 기어코 매미를 잡아보겠다고 그 높은 나무를 오르다 떨어져 머리에 구멍이난 앞 집 창식이놈은 한 일주일을 집에 누워있더랬다. 그만큼 매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누구에게 빼앗길 틈이 없다. 숨어서라도 울어야한만큼 삶이 절박한 것이다.
내 삶에 있어 저토록 갈급했던 적이 있었나를 돌아본다. 고3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입사 시험을 볼때도 다음에도 기회가 있었기에 매미만큼 절박하지는 않았을듯 싶다.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이 있듯이 매미도 한철이다. 어릴 때 어른 들이 말씀하시길 매미가 울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처럼 비가 사정없이 쏟아붓는 날이면 울지도 못하고 나뭇잎 뒤에 숨어 비를 피해야하는 매미가 안쓰럽기만 하다. 이번 주내내 비가 온다고하니 언제 짝짓기를 할 수 있을까.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사정없이 쏟아져 아스팔트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어쩌면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뿐 매미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울고 있을지 모른다. 얼마되지 않는 매미의 생, 마지막 몇 분이 남더라도 끝까지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울어대는 처연한 매미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존경스러운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최선을 닮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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