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의 불타는 향학열로 인해 서울로 전학을 가야했다. 내게는 어떤 사전고지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니 가방을 싸라는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로 그 다음 날 단숨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지라 부모님께서는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셨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청량리 시장에서 포목시장을 하던 어머니의 친척집에서 나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일주일 있다가 겨울방학이었으니 다시 고향 집으로 갈수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문제는 6학년이 되어서 부터였다. 서울의 집들은 왜 이렇게 똑같은지 귀가할 때 집을 찾는 것도 매번 헷갈렸고 거리는 온통 시멘트 바닥으로 걷는 것 자체가 적응이 되질 않았을 뿐더러 도로에는 왜그리도 차가 많은지 흙바닥과 경운기 소리에 적응이 되었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특히, 방과 후에 어울릴 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산과 냇가, 꽃과 나무 향으로 가득했던 정원, 늘 밤늦께까지 놀던 동무 들이 보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장독대 위에 올라가 고향 쪽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더군다나 친척 할아버지는 매우 엄하셔서 내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셨고 늘 공부만을 강조하셨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가 서울에 집을 구할 때까지 나는 그냥 그 집에 잠시 맡겨진 손님도 아니고, 식구도 아닌 주변인이었다. 6학년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 마당에 앉아 엄마생각, 친구들 생각에 우울해 있는데 시멘트 마당 구석진 곳에 개미 들이 일렬로 행진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인지 어디에서 빵 부스러기며 벌레의 사체며 자기보다 몇 배 더 큰 것을 옮겨 자신 들의 거처로 옮기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기도, 대견스럽기도하고 계속 보고 있다가 과자 한 조각을 개미 집 근처에 떨어뜨려 놓았다. 오다가다 커다란 과자를 발견한 개미들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 과자 주변에 망을 보는 병정 개미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일개미 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와 과자를 한입씩 뜯어 굴로 돌아간다. 그 일사 분란함과 부지런함이 얼마나 경외스럽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후로 개미 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친구 겸 부하 들이되었고 나는 그들의 대장이 되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늘 혼자였기에 빵 부스러기나 과자 조각을 개미 굴 근처에 던져주고는 개미를 관찰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개미왕국은 날로 융성해지고 번창해갔다.
그 때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대문이 다 잠겨있었고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 들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향마을에서의 나는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드물었는데 말이다. 가을이 지나면서 개미 들을 보는 횟수가 극히 줄어들었고, 초등학교를 졸업 후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에 집을 얻고 어머니가 여동생을 데리고 상경하시면서 개미 대장 생활은 잠시 접게 되었다.
후에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나의 개미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는데 그때는 서울생활에 적응을 해서 친구들이 많았음에도 학교 화단이나 집 마당에서 개미를 보면 꼭 먹이를 던져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가 심했던 듯 하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힘든 농사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도회지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셨을꺼고,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하면서도 그 때 남의 집 더부살이가 너무 무서웠다.
회사 문 앞에 데크가 있다. 날이 좋으면 점심 식사 후 커피 한잔과 함께 맑은 하늘을 즐기거나 나무들을 바라보곤 한다. 데크 옆으로 개미들이 행진을 한다. 내가 행렬을 지휘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들의 대장이다. 요사이 계속 비가와 활동을 못해서그런지 몸놀림이 분주하다. 과자를 조금 떼어 개미들의 통행로에 살포시 놓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어릴 때 보았던 그 개미들과 똑같은 개미 들이 여전히 행진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목표와 역할에 충실하다. 오고 가는 길에 장애물이 생겨도 먹이를 멀리 옮겨 놓아도 어떻게든 전진한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생사나 개미 들의 세상이나 치열함은 똑같다. 오늘을 사는 나도 개미들도 여전히 세상을 항해 나아간다. 살아있음이다.
사진 네이버(위 배경 사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