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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Sep 27. 2023

나이가 든다는 것

초고령화시대 에세이 3

[에세이] 나이가 든다는 것

민병식


마흔 중반부터인가 어느 해 봄부터 갑자기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꽂이 피면 피나보다, 이게 무슨 꽃인지 꽃말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주변 가까이있는 사물과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초록의 향기 속에 있어도 그냥 냄새가 좋네라고 했다면  지금은 지구 중력이 마음에까지 작용하는지 향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집중하고 싶어진.  나이를 먹어갈수록 풍경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는듯하다. 특히, 여름 초록의 강렬함에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본다든지, 가을의 낙엽과 단풍을 중년에 비유한다든지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지금은 세월의 흐름을 온 몸

으로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침침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쓰고 다니고 있음에도 멀리있는 것은 보이는데 컴퓨터 모니터 글씨가 보이지 않다가 안경을 벗으니 보인다. 멀리있는 사물은 안경을 써야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은 안경을 벗어야 보이고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란다. 안경점에가서 가까이와 멀리 있는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다촛점 렌즈 안경을 맞추었다 적응이 안되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괜시리 신경질이난다. 나이가 들어가니 걸리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소화능력도 떨어지고 허리며 무릎이며 조금씩 애프터 서비스를 원하는 것 같다. 운동을 꾸준히 함에도 배는 들어가지않고 근육량의 증가도 별로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기 콘트롤에 실패

하지 않는 평안한 삶인데 과일이 익어 달콤한 향기를 내듯, 겸손과 인내, 사물을 바라보는 부드러운 관조적 시각과 마음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성질의 누그러지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나이 든 사람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오직 젊음이 찬미되는 이 시대에 나도 나이듦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쨋든 '어떻게 나이가 들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할 시점이다. '아직 괜찮아, 넌 아직 젊고 멋있어'라고 말하는 자기 최면이 필요하다면

주름과 흰머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모데라토로 흐르는 시간 속의 나이 듦이라 할지라도 늙는 것이 아닌 새로운 중년의 시기를 살고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30대는 20대의 싱그러움이 부럽고 40대는 30대의 불꽃같은 열정이 부럽다. 훗날  더 나이가 들어 지금의 내가 부러워진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인 다.


나이가 들었어도 품격있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예의를 갖추게 된다. 어른 행세 한답시고 젊은 후배에게 잔소리나 하고 몽니만 부리다간 대접받지 못한다. 과거를 어떻게 살았고 지금 몇 살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이 값을 하며 사는가가 중요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육체적인 쇠퇴일뿐 정신적 성숙과 발전은 죽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적을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언제 중간에 멈추더라도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터득한 중년의 유연함도 갖추고 있다. 중년의 나는 젊다. 무의식의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순간 의식의 세계로 전환이되니 젊은 사고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거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는 내 양팔로도 다 끌어안을 수 없는 고목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나와 동무들은 냇가에서 멱을 감고 오던지, 요즘같은 가을이면 밤을 따러 앞 산에 가던지 오다가다 늘 그 나무들과 마주했고 사람으로 치면 100세도 넘는 노령

이었지만 커다란 기둥과 울창한 잎으로 마을 사람 누구나 보고 쉬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품을 내주었고, 모두가 고목을 아꼈다.


나무는 조그만 묘목으로 출발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 수많은 세월을 거쳐 큰 고목이 되어 산을 울창하게 만든다. 즉, 작은 나무로만 숲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작은 나무가 자라 더 고풍스러운 고목이 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향 마을의 오래된 나무 들처럼 경륜으로 뭉쳐져 더 멋진 외모와 인격으로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젊은 나무 들이 자신들의  미래 모습으로 바라는 그런 튼튼한 고목의 중년을 살겠노라고 다짐해

보는 이 시간,  바로 멋지게 나이가 들어가겠노라고 다짐을 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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