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치전와 수제비가 있는 밤
민병식
점점 쌀쌀함을 더해가는 휴일, 하늘이 잔뜩 울상짓더니 추적 추적 비까지 온다. 은근한 한기가 주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시간, 이럴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는데 만들기에도 편하고 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주는 분위기와의 조합이 일품인 김치전과 수제비이다.
쌀쌀한 날씨에는 김치전이나 오징어전이 좋다. 김치전의 맛은 익은 김치와 반죽의 물조절이 그 맛을 좌우하는데 밀가루가 없으면 간편하게 부침가루를 이용해도 좋다. 난 김치전을 부칠 때 익은 김치를 송송 잘게 썰어 넣고 부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씹을 때마다 입 안에서 돌아다니는 새콤 매콤한 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찰랑 찰랑한 기름 위에서 튀겨지는 고소한 냄새 때문에 서둘러 입 안에 넣다가 입 천장을 데이기 일쑤지만 뱃 속까지 전달되는 뜨거운 맛에 썰렁했던 날씨가 어느새 따스해진다.
겨울철에는 수제비를 해먹기도 한다.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하고 두어시간 숙성을 시켜 두었다가 반죽덩이를 얇게 늘려가며 손으로 살짝 살짝 떼어 수제비를 끓인다. 멸치육수에 감자나 애호박을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 한 소끔 끓여서는 수제비 한 숟갈에 총각김치를 '아그작' 한 입 베어먹는 후 '후루룩' 뜨끈한 국물을 들이
키면 추위를 이겨내는데는 이만한 방법도 없다.
수제비는 한국 전쟁 후 춥고 배고팠던 시절 미국의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서민들의 주식
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을 겪으신 아버지께서도 수제비를 질릴 정도로 드셨
다고 하시면서도 옛날의 향수를 부르는 맛이라며 가끔 찾으시곤한다.
김치전과 수제비를 만들어 본다. 지글 지글 노릇 노릇 익어가는 김치전 한 장과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에 추위를 잊고 어린시절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하던 그 밥상을 먹는다. 밥은 부침개요, 국은 수제비, 비록 진수성찬, 산해진미는 아니지만 그것에 못지 않는 맛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큰 것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감사하고 즐거울 수 있음의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덧 시간은 시나브로 밤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평온한 이 시간에 김치전 한 장이 한 밤의 스산함을 피해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몸을 지지고 있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