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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문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벽속의 문

민병식


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주말이다. 그냥 편하게 쉬자고 마음먹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있는 날이면 온통 사방에 벽만 보인다. 알록달록 색깔이 화려한 벽지로 치장을 해놓았으나 벽은 벽일 뿐이다.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밖을 나섰지만 보이는 것은 온통 앞을 가로막는 시멘트가 벽 뿐, 산책할만한 길을 따라 겨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입구에서 몇번의 오류 끝에 통과, 1층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이제 겨우 3층을 올라가는 중이다. 사람을 싣고 나르는 저 움직이는 레고 상자는 나의 바쁨이나 조급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좀 빨리 움직이나 싶더니 15층, 17층 도무지 내려올 생각이 없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데 반나절은 걸리는 듯, 이 기분은 나만 그런 것일가. 한참의 뻐근함과 답답함 끝에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성질이 급해서 잡혀 뭍에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는 갈치 같은 물고기가 있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다. 드디어 1층이다. 잽싸게 올라탄다. 16층을 누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거다. 짜증이 나는 것을 꾸덕꾸덕 참고 지하로 간다. 다 시상승할 차례, 다시 아까의 1층에서 또 문이 열리고 나이가제법 지긋한 남자 분이 탑승한다.


“아이고, 16층에 사시나 봅니다. 우리 아이 들이 많이 뛰어서 불편하시죠? 죄송합니다. 전 17층에 삽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심하게 기침을 한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코로나가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 여름 휴가철과 함께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어디서 노출되었는지도 모르게 코로나에 걸려 기침과 몸살에 한껏 고생했던 터라 두려움이 앞선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잘 주의시키겠습니다.”


“아, 예. 그럴 수 있죠.”


대화하기 싫다. 빨리 이 상자 밖으로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마치 등반가가 암벽을 등반하듯 꾸역꾸역 한 층씩 올라가는데 아직 반 정도 밖에 오르지 않았음에도 힘에 부치는지 좀처럼 힘을 못 쓴다. 빨리 올라가라고 마음속으로 재촉의 채찍을 수도 없이 때리는 순간 드디어 문이 열린다‘후다닥’,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한 차례의 비밀번호 오류를 가져오고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작은 면적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주거 형태인 아파트는 집값 상승세에 편승한 최상의 재산 증식의 수단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최고 장점은 각 동마다 경비실이 있고 주차장도 넉넉히 구비되어있는 데다가 실내는 에어컨부터 각종 가전제품이옵션으로 설치되어 있고 바로 앞 상가에는 음식점부터 미용실까지 생활의 편의성으로는 최고다. 반면, 편한 대신 지불 해야할 대가도 있는데 바로 소통의 단절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은 물론 사람과 자연 사이의 소통까지도 극히 제한된다.가뜩이나

현대의 도시는 고층건물과 시멘트 바닥, 아스팔트와 벽돌로 구분지어 지고 있는데 점점 더 견고해지고 높아지는 아파트 자체가 벽과 담이 되어 외부로부터의 차단을 만들어 낸다.


어릴 때 고향의 마을은 차도를 제외한 모든 곳이 모두 흙이었다. 흙길을 밟고 뛰어다니며 술래잡기 놀이를 했고 구슬치기를 했다. 논두렁과 앞 산, 들판과 앞마당까지도 모두 흙이었고 대부분 가정이 농사를 지어 땅에서 나는 곡물을 먹고 살았으니 흙은 인간 생존의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였다. 담장은 없거나 낮았고 집집마다 문이 열려있어서 뛰어놀다가 목이 마르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 우물물을 퍼마시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서도 대문을 열어놓는 집은 거의 없다. 함부로 문을 열어놓으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거다. 그만큼 세상은 초라해지고 각박해져만 간다. 영혼을 끌어 모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장만을 하였는데 비싼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다아파트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곳인지 재테크의 수단으로 집 값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걱정의 공간인지 의심스럽다. 생각해 보면 초가삼간에 살며 아궁이에 장작을 땠어도 그 옛날 고향의 집들이 따뜻하고 행복했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집값이 더 오르지 않아도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어도 거처할 곳이 있음에 대한 감사와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안분지족의 마음이 중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의 굴뚝과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콘크리트와 인조 대리석, 보일러가 들어섰다. 불편함이 편리함으로바뀌었으나 지나친 욕심으로 기후 이상 변화 등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즈음,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고향을 어떻게 추억할지 궁금하다. 차를 타고 차단기를 통해 통과해 들어가는 출입문, 닭장처럼 다 똑같이 생긴 창문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고 하늘 높이 우뚝 솟아있는 고층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레고 나라로 기억하지는 않을까.


예로부터 벽은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벽, 담장, 외벽 등이다. 성벽은 외세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담장은 불순 세력의 침입을 차단하거나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외벽은 집을 지탱하고 추위나 비바람 등을 막기 위한 시설물

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마음의 벽이다. 마음의 벽은 단절을 의미 한다. 특히 곤란한 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 간에 세워진 벽이나 자신을 향한 스스로 만든 벽도 있다는 거다. 눈에 보이는 벽은 언제든지 부술 수 있는 반면, 보이지 않는 벽은 쉽게 허물지 못한다. 이런 벽은 가만히 놔두면 계속 두꺼워지고 높아진

다는데 맹점이 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 한동안 눈에 뜨이지 않아 경찰과 함께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따고 열어보니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생전에 망자의 벽은 어떤 벽이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온통 깜깜한 암흑의 벽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앞에 놓인 벽을 뛰어넘고 뚫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노력을 했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벽 앞에서의 좌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벽은 훤히 보이는데넘을수 없고 깰 수도 없는 두꺼운 유리벽이었을 수 있다. 화려한 고층건물과 아파트, 수많은 자동차 들, 번쩍거리는 거리와 북적거리는사람 들 사이에서 그도 함께 있고 싶었을 것이다. 통과할 수 없는 유리벽 안에서 실망하고 좌절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한구석이 싸늘해져 온다.


얼마나 더 많은 벽을 부수고 뚫어야 함께 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세상은 무관심의 벽, 이기의 벽을무너뜨리지 않고는 만들지 못하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지고 전쟁으로 얼룩지고 경제 불황으로 고통 받는 지금, 모두가 각자도생이다. 그러니 자기방어를 위해 계속 벽을 쌓는다. 그나마 벽 안에서 평온하고 안전하면 좋은데 그 안에서 또 다른 무수히 많은 벽들이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고 점점 더 두꺼워지는 두께에 삶은 더 딱딱해진다. 벽을 무너뜨리는 그 시작은 문이다. 우리는 문을 통해 벽 사이를 통과하고 연결된 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들어가 교류하고 소통한다. 벽이 아무리 견고해도 문이 있다면 얼마든지 들고 날 수 있다. 모든 벽에는 문이 있으나 문을 보지 못하고 찾지 않고 높은 벽만 쳐다보고 한숨짓고있는 거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소통과 나눔의 문을 만들고 인간다움과 연대의 길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존중과 사랑 사이에서 행복해야할 삶이 어느새부터 날카로워지려고 한다. 흔들리는 시대, 깜깜한 세상에서불안한 삶을 살면서 무엇을 위해 사는 삶인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냥 눈앞에 있는 나를 위한 삶에 늘 바쁘다. 언젠가 명상 캠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던 순간이 떠오른다. 치열한 세상의 생존경쟁이라는 짐에 짓눌렸던 무거움을 내려놓던 시간, 내안의 욕심과 바쁨을 평안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꾸어 채우려고 하지 않았던가. 샘에서 물이 솟아 계곡을 흐르고 강물이 되듯 행복한 세상은 희망과 함께 공동체의 마음을 향해 움직이는 선의지의 흐름인 것 벽 속의 문은 바로 내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달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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