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다. 하루종일 복잡한 업무에 시달렸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게 진이 빠지는듯 하다. 밥도 먹기 싫고 갈증만 나는 것이 피곤함의 정도가 마음 속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아주 잠시라도 조용히 쉬고 싶어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근처 커피숍을 찾는다. 왜 이렇게 피곤한 것인지에 대해 원인을 찾는다. 명확하다. 어제, 오늘 이틀 간 쉴 틈이 없었다. L커피숍 앞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 최근 새로 생긴 커피숍이다. 들어가려다보니 2층에 치과가 있다. 작년 여름에 임플란트를 한 곳이다.
입구에 '저희 치과는 과잉진료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눈에 딱 띄게 써놓았던 곳, 들어가서 상담을 받아보니 매니저가 원장님이 임프란트 전문이라고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던 곳, 순식간에 무엇에 홀린듯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임플란트를 하기로하고 이빨 두 개를 뽑았던 곳, 그것 까진 그렇다치더라도 수개월의 치료끝에 임플란트가 끝났음에도 여기 저기 손 볼곳이 많다며 집요하게 치료를 권유하여 짜증날정도로 힘들었던 곳이라 쉬는게 쉬는 것이 아닐 것 같아 발걸음을 돌린다.
가까운 S 커피숍을 찾았다. 3층짜리 대형 체인이다. 커피를 주문하여 2층으로 간다. 마침 2인용 구석자리가 비었다. 고소한 커피내음을 천천히 음미하며 한 모금 마시며 턱을 괴고 비스듬히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잠깐 졸아도 좋고 딴 생각없이 멍을 때려도 좋다.
그냥 이대로 아주 잠시만 나를 위로하곶싶다. 갑자기 앞자리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커피 숍을 뒤덮는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기껏해야 이십대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사랑 놀음 중이다.
갑자기 쪽쪽 소리가 난다. 뽀뽀를 하고 껴안고 난리가 났다. 머리 좀 식히려고 왔는데 순간 짜증이난다. 도저히 쉴 수가 없다. 그냥 조용히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이 삼십분정도 많은 사람 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농도 짙은 애정행각을 보러온 것은 아닌데 둘이서 있을 곳을 가던지 라는 생각에 한숨이 쉬어진다.
몸을 옆으로 돌려 쳐다보지 않으려해도 산발적으로 들리는 웃음 소리와 쪽쪽 소리 때문에 신경이 온통 그리로 쏠린다.
종국에는
'왜 조용하지 이쯤에는 코맹맹이소리가 나오며 쪽쪽 거릴 때가 됐는데?'
하고 기대하는 처지가 되었다. 버티고 버티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번에 커피를 털어버리고는 일어선다. 힐끗 연인을 쳐다보니 주변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신경 쓰지 않을 기세로 둘만의 세상이다.
'에라 이 쪽쪽이 들아 잘 있어라. 난 갈란다.'
그들의 별명을 '쪽쪽이 연인'으로 이름 짓고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찬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파고 드는 겨울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걸음 한 쪽쪽이 연인과 나의 청춘에 대해 생각한다. 한 걸음에 나의 이십대는 어땠는가. 커피숍 젊은 연인의 모습이 내게는 없었는가. 걸음 걸음마다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로의 여행, 가물거리는 그 옛날을 소환해보니 그들에게 딱히 지적할만한 입장이 아닌듯하다.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를 가릴 나이었음에도 끓는 피가 청춘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른 들의 눈에 꼴 사나웠을 행동을 나도 하고 다녔을터였다. 청춘의 힘이다. 저 나이가 아니면 언제 또 저런 행동을 해볼까를 생각하면 눈꼴 시어도 모른체하고 지나갈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그 젊은이들의 행동을 지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점점 나이가 들어갈 것이고 그 때가서 보고 겪어야할 몫이 있을 것이니 그저 사랑의 힘이 겠거니하고 바라보고 싶다.
중년이 한창 익어가는 나이, 어쩌면 난 지금은 누릴 수없는 그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선 안돼'에서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이 바뀌어가는 시간의 흐름앞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저 넓은 광야를 달리던 말이 이제 느릿느릿 걸어가는 낙타가 되어가고 점점 소멸되어가는 청춘의 태양은 멀고도 험난한 삶의 하루를 은은한 달빛으로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