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 사물은 물론 눈에보이지 않는 것들 까지 서로 뗄레야 뗄수없는 유기적인 사슬의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 얽히고 설키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관계란 무엇일까. 가까이는 피가 섞인 가족,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엮어진 친구, 사랑의 끈으로 이어진 연인, 한 발떨어져 있지만 집에 있는 것만큼의 시간을 함께하는 직장의 동료, 조금 곁다리로 나아가면 동호회, 그날 그날 만나는 수많은 사람 들, 우리는 그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희로애락의 과정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소중한 생존요소이므로 원활한 관계는 필수적인데 늘 좋기만 하면 좋으련만 때로는 갈등과 마찰, 생각의 차이 등으로 관계가 흐트러질 때가 있다. 결국 관계의 실패는 이별, 싸움, 증오, 회피 등의 결과를 가져오고 때론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기기도 한다. 평생을 약속했던 연인과 이별을 하면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이 그렇고 죽마고우인 친구 보증을 서주었다가 친구도 잃고 돈도 잃는 경우가 또 그렇다. 어디 인간 대 인간 뿐인가. 편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지구상 어떤 생명체보다 편리한 삶을 가져왔지만 그 댓가로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등으로 인한 이상 기후, 전염병 등 인류의 생존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지금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이 땅의 공기, 숲, 바다 모든 환경과 자원을 아끼고 사랑해야하는데 그저 받기만 하려고 했으니 그 폐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할 몫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관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고 받음이다. 내가 상대를 위해주어야 상대도 나를 위해줄것이고 내가 사랑을 주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부모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결코 빗나갈 수가 없다. 아이는 건전한 성인으로 크려고 스스로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로 부모에게 키운 보람을 돌려준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받는게 아니라 주는 거라는 말이 있는데 만일한 한 사람이 주기만하고 나머지 한사람이 받기만 한다면 그 사랑이 탄탄하게 오래갈 수 있을까. 균형이 깨지면 흔들리게 되고 결국 불협화음이 생긴다. 부부도 이혼하면 남인데 연인 쯤이야. 부부 사이도 촌수가 없는 무촌아닌가. '사랑은 주는 것'이란 말의 앞에는 주어인 서로가 빠져있는 듯하다. 서로 주면 서로를 받는다. 연애든 직장생활이든 친구 관계든 모두 주고 받음의 상호작용이다.
어느 가요의 한 소절을 보면 이런 가사가 있다.
"모든 것을 다주는 그런 사랑을 해봐, 받으려고만 하는 그런 사랑말고"
이 부분의 가사는 서로 주려고 하는 사랑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받으려고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의 파트너가 아닌 '호갱'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 성장해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 당연하고 맞지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비결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나랑 조금 달라도 품어주는 것, 안쓰러움, 이해, 다가감, 미안함, 고마움을 주려고 노력할 때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어떤 관계이라도 공짜는 없다. 집을 지을 때 당연히 처음에는 공터밖에 없다. 땅을 다지고 파내고 뼈대를 세우고 바닥 공사를 하고 보일러도 설치하고 인테리어를 해서 해야 완성되는데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들이느냐에 따라 그 집의 수준이 달라진다. 불량 자재를 쓰거나 철근 등을 빼먹고 짓는다면다 비가 새고 금이 가는 부실공사가 될 것이다. 나와는 겉모습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사람과 만들어가는 관계, 자연으로부터 받는 것들에 대해 아끼고 사랑하며 보호하려는 마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감사와 사랑이 필요하다. 깊든 표면적이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어느 것이든 공짜는 없다. Give and Tak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