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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n 02. 2024

지금은 염색할 때

마음 에세이

[에세이] 금은 염색할 때

한결


그동안 작정했던 염색을 하는 날이다. 거울을 본다. 옆머리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갈치 색의 흰머리들이 삐죽 삐죽 솟아있다. 여기 저기 피어있는 세월의 흔적들, 이럴 때는 참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자꾸 나이만 들어가는 것 같아 무기력해지는 기분이다. 일상이 바쁜지라 주말이나 되어야 시간을 낼 수 있어서 미루고 미루다 미용실을 간다. 이번 이 세번 째 염색이다. 내가 염색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함이고 둘째는 자기 관리의 측면이며 셋째는 나 자신을 위한 서비스이다. 젊어보인다는 것은 아직 은퇴할 날이  남아있으니 회사 생활을 하면서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거니와 나이 지긋하게 보일때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고 자기관리 측면은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깔끔함을 추구함으로써 좀 더 단정한 외관으로 지저분해 보이고 싶지 않은 나만의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앞의 두가지를 아우름에 더하여 나자신을 사랑하기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물론 흰 머리를 감추고 검은 머리가 된다고 하여 젊은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진리를 잘 알고 있기에 염색은 무언가 노력했다는,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내적 언어이다. 그나마 지금이니 염색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이가 들면 그나마 염색도 하지 못할 때가 올것이다. 염색을 하고 나면 산뜻해지는 기분이다. 이 검정색은 약 한 달까지는 제법 버틸만 하다. 한달 반 정도가 흐른 무렵에는 흰 부분이 사정없이 솟구쳐오르니 건물 외관을 새로 단장한 페인트칠이 듬성 듬성 벗겨진듯  쇠락의 기미가 보인다. 그럴때면 점점 머리에 신경을 쓰게된다.  아무리 왁스를 바르거나 잘라도 흰머리를 없앨수는 없다. 그럼에도 난 검은 머리이고 싶다. 내 안에서 아직까지는 흰 색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염색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탈모다.  정수리 부근의 머리가 슬금스늠 빠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언젠가는머리를 빡빡밀고 두피 문신을 해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피할 수없는 노화다. 운동을 통해 노화를  늦출수도 있고 피부시술이나 음식을 통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노화를 거쳐 종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세상의 만물 중에서 소멸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젊은 시절엔, 아니 40대 까지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이 50을 넘기고 60을 바라보면서 또, 노쇠하여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지나간 시간은 순간이며 인생의 종착지는 죽음이된다는 것은 피할 수없는 사실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은 늘어만 가는 흰머리와 밀당 중이만 언젠가는 이 흰머리도 염색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기에 지금의 소중함을 느끼게된다. 결국 지금 행복해야한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지금 무엇을 할 때, 지금 누구를 만날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 할 때 가장 행복한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삶은 소중하다. 내가 행복해야 주위도 행복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음이 아닌, 천 년 만년 후가 아닌  언젠가 다가올 것이아닌 지금의 행복을 찾는 거다.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 때문에 무엇이 있어 행복한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염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한결 기분이 산뜻하다. 볕은 뜨겁지만 길가의 가로수만 보아도 초록의 스펙트럼이 눈 앞에 펼쳐진다. 머얼리 산을 쳐다본다. 마치 파도처럼 풍경이 휘돌아치는 것이 바야흐로 여름이다. 하늘의 파랑과 먼 산의 초록,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는 시간, 청춘을 이미 지났건만 마음의 청춘은 계속되고 있음에 남아 있는 내 시간이 온통 푸르르라고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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