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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27. 2024

반딧불이

공감 에세이

[에세이] 반딧불이

한결


가끔 집 앞의 동산을 산책하다 보면 흙길을 걸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있는데 어릴 뛰어 놀던 고향마을이다. 어릴적 고향 마을은 소달구지와 경운기가 차보다 흔했다. 자가용을 가진 집은 전혀 없었고 차래야 봐야 관공서 차나 완행버스, 그 완행버스보다 더많았던 군인 지프차와 트럭이 다였다. TV도 흔치 않아서 동네 유일한 짜장면집에 한 대, 군인 아저씨들을 위한 술집  몇 곳, 그리고 자전거 포에 한 대 등 당시는 재산목록 1호 였을 정도로 귀했다.


집이 기차역 부근이었음에도 바닥은 신작로 이외에는 온통 흙길이었고 집밖에는 바로 논이 있을 정도로 깡촌이었는데 지명을 대면 그쪽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에겐 악명높은 곳으로 유명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어릴적에는 거의 도시의 문명과는 동떨어져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명이란 것이 있다가없어지면 불편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없을 경우에는 불편함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심이 된 마음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자연과의 일체였다. 요즘같은 여름이면 하천에서 발가벗고 멱을 감았고 산에 올라가 개암을 따 먹었고 뱀이며 개구리는 흉물스럽기보다는 늘 지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속 친구였다. 가을이면 밤을 따러 온 산을 돌아다니고 겨울이면 눈을 맞으며 강에서 썰매를 탔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처음 도시로 전학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신기한 별천지 였고 편리하고 현대적이라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숨이 막혀갔다. 그럴수록 고향마을 역의 철길을 따라 가지런히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그리웠고  친구들과 밤을 따러 다니던 앞산의 낙엽과 부엽토가 그리웠다. 노을이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일 무렵 마을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에서 나무 타는 냄새와 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을 찾아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 들의  목소리, 저녁을 먹고나면 약속한 것 것도 아닌데 슬슬 동네 커다란 공터로 모이는 아이 들, 이는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이 소중한 기억들은 내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스케치에 해당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세상의 우주에 있는 별들을 다 모아놓은 듯한 반딧불은 일생에 몇 번 보지못한 또 다른 세상이었는데 마을 외진 곳에는 사람이 죽으면 태워서 묻을 곳으로가는 상여집이 있었다. 어느 무더운 8월의 여름, 그 해에 아이 들사이에 상여집 근처에 도깨비가 나타나 사람을 홀린다는 소문이돌고 있었다. 그때 나와 친구들은 고향의 톰소오여 였으며 허클베리 핀 이었으므로 도깨비를 반드시 보겠다고 동무들과 모험을 떠난적이 있었다. 깜깜한 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흙같은 암흑속에서 산 기슭 밑에 다 무너져가는 조그만 집 한 채 그 안에 상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꽉잡고 도깨비를 보기위해 숨을 죽이고 있던 중 초록색 발광체들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도깨비나 도깨비 불이 아닌 반딧불이였다. 마치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요정 '팅커벨' 들이이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듯 여름밤의 무도회를 보는 듯했다.


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을 방문하곤하는데  그때의 상여집은 없어졌고  친구들도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 한 두명을 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럴 때는 그 옛날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옛 추억을 떠올린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와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점차 도시인이 되어갔지만 고향의 자연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는 즈음 고향으로의 귀촌을 꿈꾸고 있는데 언젠가 고향을  가면 반딧불이는 그 때처럼 멋진 춤사위로 나를 환영해줄까.

이젠  만날 친구도 거의 없고 도시 생활이 더 편한데 왜 나는 고향으로 가고싶어할까.


일년에 한  번이나 갔을까. 어렸을 때 살던  고향 집도 이젠 남의 것이 되어 터만 남아있고 점점 더 멀어지고 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더 가까워져만 가는 것은 그때의 반딧불이가 준 우주의 세상이 아마 내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일것이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반딧불이가 있을까.  수구초심이라고 했다. 아직 세상을 등질 나이는 아니지만 고향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반딧불이를 보고싶은 마음은 생활에  찌들고 경쟁에 일그러진 지금의 짐을 그만 내려놓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인 어린 시절로 돌아가 때묻은 내 마음에 순수함을 되찾고 싶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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