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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12. 2024

여름 예찬

공감 에세이

[에세이] 여름 예찬

한결


뜨거운 태양, 습한 더위가 턱밑까지 쫓아온다. 더위가  내 뒤에  바짝붙어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고 있다.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숨 쉴때마다 후즐근한 공기가 폐부로 유입되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듯 답답하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워 평소 더위를 즐긴다고 자부하던 나도 불가항력이다. 그래도 난 여름이 좋다. 미지근한 바람 한 점이 고맙고 타는 듯한 지면 위에서 열기가 올라와도 잎이 울창한 커다란 나무가 선사하는 찰나의 그늘이 고맙고. 찐득찐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싸 땀에 쩔어 끈적끈적한 기운에 만사가 귀찮더라도 샤워기 꼭지에서 나오는 폭포같은 물줄기로 한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함이 퍼지는 여름이 좋다.


난 어렸을 때부터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과 겨울은 놀거리가 달랐기에 계절의 좋고 싫음을 느끼지 못했다. 여름은 여름대로 더워서 좋았고 겨울은 겨울대로 추워서 좋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서부터는 겨울이 싫어지기 시작해 중년에 접어들어서부터는 질색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일단 아픈 곳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디스크 증세가 있는 허리와 목 할 것없이 뻣뻣해지고 자칫 삐끗하면 담이 든다. 또 사나의 이유는 추워서 외부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여름에 비해 겨울은 추위가 싫어서 꼭 필요한 시간 아니면 밖을 나가지 못한다.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도 귀찮고 샤워하기전 옷을 탈의 했을 때 몸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도 싫다. 혹한이 찾아오기라도 하는 날엔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어도 몸안을 파고드는 칼날같은 바람은 힘을 더 빠지게 만든다.


여름은 초록이다. 연두 빛부터 짙은 청녹색까지 온갖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계절 모든 사물 들이 살아있다. 산과 들은 푸르름의 기운과 파릇한 풀냄새로 온세상을 뒤덮고 수박, 복숭아처럼 신선한 과일들은 향긋한 여름 향기를 내뿜는다. 강과 바다는 여름의 기운을 넘치도록 뿜어내며 정열과 사랑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계절이다. 여름은 세상의 마음 하나 하나가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계절을 통털어 살아있다는 외침, 사랑하고 싶다는 포효, 그토록 치열한  삶에 대한 갈망은 매미 소리 이외엔 들어본 적이 없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로수 그늘 아래를  천천히 산책하는 일은 그 어떤 풍경과도 바꿀 수 없는, 어쩌면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회생의 착각을 주는 시간이다.


오늘도 여름이 온세상을 덮었다.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여름이 추렁주렁 매달리고 땅방울이 눈까지 흘러들어 따가움에 연신 손등으로 훔쳐내면서도 여름은 즐겁고 여름은 빛난다. 사타구니에 땀이차 땀띠가 생겨도 축축한 습기로 번들번들한 팔을 손으로 문지르면 때가 쫙쫙 밀릴것 같아도 에어컨을 쐬다 잠시 밖으로 나가면 땀이 뚝뚝 흘러 티셔츠를 적셔도 여름은 살아있고 나도 여름과 함께 살아있음을 즐긴다. 한번은 남해로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는데 바람한점 안부는 날, 펜션 앞 파라솔 의자에 아침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주스와 수박 몇덩이로 여름 풍경을 즐긴적이 있었다. 그 옛날 계곡에 갔을 때는 그 뜨거운 날씨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낚시를 했고 볕에 그을려 팔뚝이 빨갛게 익었을 때도 파란 하늘과 구름, 멀리 바라보이는 나무들의 흔들림을 보면 여름은 청춘이요. 사랑이며 젊음의 절정이다. 어쩌면 난  점점 흐르는 세월의 야속함과 해가 갈수록 약해져가는 중년의 남성성을 여름으로 대신하며 그 옛날의 청춘을 되새김질하고 있는지 모른다.


밤이 되니 더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럴 땐 산책을 하면서 여름밤을 즐길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시원한 음료와 함께 여름밤을 마시며 걷는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매미는 잘 생각이 없는 듯 울어대고 도로엔 자동차 들이 불빛을 뿜어댈 때 동네어귀 호프집에선 청춘들의 활기찬 웃음이 퍼지고 낮에 흐느적 거리던 건물 들과 거리, 나무와 공기 들이 다시 기운을 찾아  살아 움직인다. 밤이 되면 더욱 맹렬해지는 삶의 움직임이 가득한 오늘 밤을 내년 여름 이 맘때가 되면 기억하게 되겠지. 덥지만 행복하기만한 여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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