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으로 회를 먹으려고 횟집 앞에 섰다.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이 힘없이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힘이 없어보인다. 몇몇 물고기들은 이미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있고 나머지도 겨우 마지 못해 움직이는 듯하다. 물고기 들은 여러개의 수족관에 종류별로 구분되어 갖혀있는데 마치 정원 초과되어 겹겹이 갇혀 있는 수용시설 같기도 하고 저녁 퇴근시간 녹초가 된 사람 들로 발 디딜틈없는 지하철같기도 하다. 산소가 모자라는지 수면 위로 올라와 연신 입을 뻐끔대는 우럭,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듯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잠에 취한듯 미동도 없는 광어, 지느러미가 다 헤져 비틀거리는 도미, 다른 수족관에에는 온몸을 조여드는 빨간 망에 싸여 윤기를 잃어가는 곁다리로 제공될 해삼, 멍게 등이 꽁꽁 묶여있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둥근 수족관 안을 끊임없이 돌고 있다.
곧 사람 들의 식탁에 오를 운명인 저들을 보니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재수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놈은 커다란 바다를 누볐겠고 어떤 놈은 양식장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살아온 환경은 달라도 어느 쪽이나 똑같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의 생, 뜰채질 한 번에 삶과 죽음이 왔다갔다하는 목숨이다. 요리사가 나와 무표정하게 물고기를 건진다.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낼 때 퍼덕거리는 것은 살기위한 본능일까 아니면 놀라서 그런 것일까. 뜰째에 건져질 때 물고기는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을까. 물고기는 수족관 유리벽만큼만 딱 자신의 세상이다. 어디서 잡혀왔는지는 제각각이지만 곧 죽을 운명을 살고 있다 사람도 유한의 문제에 있어선 매 한가지다.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유한하지 않을 것처럼 산다. 돈, 명예, 권력을 갖으면 무한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데도 갖고 싶은 것을 향해 온 힘을 전력투구한다.
얼마 전 휴일 거리를 지나다 회사 후배 한 명을 만났다. 외출을 하는 모양이다. 어딜 가느냐고 물으니 여자친구를 만나러가는 길이라고 한다.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며 잠깐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친구의 청춘이 마냥 부러웠다.
'참 좋을 때네. 젊음이 있고 사랑도 있고, 얼마나 오늘이 즐거울까.'
며칠 뒤 회사에서 만난 후배에게 데이트 잘했나고 물었더니 헤어졌단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어보니 여친 부모님이 자신을 맘에 안들어하신다고 한다. 여자 친구는 자신보다 직업도 좋고 돈도 많이 벌 뿐더러 여친 집안이 좋단다. 금수저인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백수도 아닌 멀쩡한 사람을 맘에 들지 않는다니 아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가보다.
"아니, 무슨, 자네도 탄탄한 직장있고 월급 따박따박 받고 이렇게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 어려운 요즘세상에 뭘 따진다는게 말이 되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집안이 워낙 좋아요. 학력도 직업도 모두 저보단 한 수위니까 더 좋은 사윗감 얻고 싶겠죠. 그쪽 부모님이 제가 다 마음에 안든데요."
귀한 딸이니 나로서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천하의 몹쓸 놈도 아니고 요즘은 이 후배만큼 사회생활하기도 힘들다. 예의바르고 성실하고 참 괜찮은 후배인데다가 몰아닥치는 경제 한파에 청년 실업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세상에서 이 정도면 되지,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의 삶도 물고기들과 똑같다. 넓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늘 일상이라는 틀에 얽매여 다람쥐 쳇바퀴돌 듯 살고 있는데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누비는 고래처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인간이라고해서 수족관 물고기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이 넓지 않고 생각이 크지 않다면 넓은 세상을 넓게 보지 않고 좁게 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바다도 되고 수족관도 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지난 주말은 힘든 날이었다.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돌봄을 하는데 비도 오고 날도 춥고 몸살기가 생겨 귀찮음과 짜증으로 점철된 하루였다. 나도 요즘 수족관처럼 작아져 있다. 지금은 내가 바다의 마음을 갖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