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여름엔 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여름 날 어느 하루, 오전에 소나기가 실컷 퍼붓다가 그친 후 회사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나무 그늘을 울창하게 드리운 가로수길을 즐기며 걷던 중 '찌직' 소리가 나길래 밑을 내려다 보았더니 달팽이 한 마리가 밟혀 죽었다. 달팽이는 볕을 쪼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고 먹을 풀이 많은 풀밭으로 이동 중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필이면 내 발에 밟혀 죽다니 뭉개진 껍질사이로 살이 보인다. 느린 걸음이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었을텐데 허름한 집을 이고 길을 나섰다가 비명횡사를 당하다니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어디 있을까. 달팽이도 엄연히 살아있는 생물인데 너무 미안했다.
휴일 아침, 오늘도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머금은 먹물을 내 밷는 듯 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고 어둑 어둑 긴장감이 팽팽하다. 툭툭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파트 쉼터에 앉아 차를 한 잔 하면서 바깥바람을 쬐던 중 가림 벽에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있다. 비를 맞으려고 나온 것인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나가는 비 같아서 그대로 있다가는 해가 뜨면 말라 죽을텐데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있는 힘을 다해 움직일테지만 이미 벽의 중간 쯤이나 올라와 있어 방향을 트는데만 해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살짝 들어 바로 밑에 수풀 가운데로 옮겨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달팽이가 살 수 있을까. 날은 이미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아침 저녁으론 이미 쌀쌀한 날씨인데 겨울잠 준비는 생각에 없는 건지 쭈그려 앉아 한 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때서야 조금씩 꿈틀거린다.
저녁 즈음에 다시 그 자리에 가보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아까의 달팽이는 내가 데려다준 수풀에 달팽이의 먹이가 부족해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벽의 반대 쪽은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 블럭이니 이미 그쪽으로 갔다가 먼거리 이동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 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풀숲에만 있던 달팽이가 심심함을 달래고자 소풍을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풀에서 달팽이는 다시 또 도전을 해야한다. 방향을 잘못들면 끝없는 사막같은 시멘트 바닥을 기다가 점막이 상해 죽을수도 있고 볕에 말라죽을 수도 있다. 달팽이는 다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몸으로 치대며 걷는다. 몸체 바닥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없다면 거친 시멘트바닥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그럼에도 끝없이 앞만 보고 간다. 자신의 몸에서 끈적이는 액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더 이상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앞으로 전진한다. 바로 생에 대한 끈적거림,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다.
우리가 보기에 달팽이는 느리다. 그러나 느리지 않을 수있다.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속도는 우리가 판단할 것이 못된다. 가다보면 벽도 나오고 오르막길도 나오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가다가 사막에서 내리 쬐는 듯한 뜨거운 볕의 기운에 등에 지고 다니던 집 안으로 들어가 웅크려 삶을 마감할지언정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똑같다.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인간 세상과는 달리 달팽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한 순응함과 혼자만의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줄 뿐이다. 사람들은 달팽이의 연약함과 느림을 동정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을 일삼는 스스로의 치부는 깨닫지못한다.
달팽이에게 남 탓은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살아나가는 달팽이를 보면서 불만에 분노하지 않고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배운다. 지금을 사는 우리, 남들보다 더 가져야하고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살아야 성공한 삶이라고 기준을 정해놓고 조급한 삶을 살지는 않는지 돌아볼 때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스스로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포장하면서, 그러나 결국은 좋은 차, 넓은 집, 명예, 권력 만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 내게 필요한 것 이외에 것에 욕심을 내며 그것에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 주머니에 계속 무언가를 채우려 정작 지금의 조건에 대한 감사함과 만족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미련할 만큼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달팽이, 나는 지금까지 우직한 느림의 발걸음을 옳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어쩌면 그것이 최선의 정직임을 외면하며 산 것은 아닌지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