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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Oct 07. 2024

중년 유감(遺憾).

마음 에세이

[에세이] 중년 유감(遺憾).

한결


한결 오랜만에 평화로운 휴식이다. 주말 오전 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언제 피곤했는지 싶게 몸이 가뿐하다. 이번 주는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마 지난 주 업무량도 많았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환절기에 신체가 적응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또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돌봄을 수행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탓도 있겠다. 아파트 1층 쉼터에 앉는다. 하늘은 바다처럼 파랗고 가을 볕은 따뜻하다. 오랜만에 즐기는 혼자만의 여유다. 따뜻한 커피에서 가을 향이 난다.


중년은 계절로 따지면 가을인 듯한데 문제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점점 체력이 딸린다는거다.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먹어야하나, 뜨거운 태양처럼  강렬한 여름처럼 활기참은 온데 간데 없고 툭툭 비쩍마른 낙엽을 떨구어 내는 나무처럼 신체적 능력의 하락과 함께 노년의 계절인 겨울로 향하는듯 자꾸만 쉬고만 싶고 졸립기만하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겨울 찬 서리처럼 뒤덮는 흰머리, 아무리 운동을 해도 들어가지 않는 똥배가 나를 슬프게한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을 하면 젊은이 못지않은 복부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똑같은 운동량으론 어림도 없다. 마치 지난 세월없이 순식 간에 중년으로 시간이동을 한듯한 기분이다. 의학계의 발표에 의하면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의 감소가 빨라져 점점 여성화가 되어간단다. 남성성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사회는 계속 진보하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나 중년은 시간을 따라잡지못한다. 그런면에서 이 시대의 중년들은 참 불쌍하기 그지없다. 끼인세대라고 할까.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복종심과 책임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내색않는 세대, 그러나 밑의 세대로부터 당찬 도전과 자기 중심의 가치관에 놀라면서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사람 들이다. 최근들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중년 남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교사상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남자는 무조건 강해야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 있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삭이기만할 뿐 누구에게도 아픔을 표현하지 않으려한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강한사람으로 포장해야하고 약함을 감추어야한다.  끈임없는 경쟁과  도태의 사회이기도 하고, 엄연히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혹자는 너무 세상을 각박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본능은 당연한 것이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빨리도 흘렀는지 인생무상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 누구도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고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순간도 한 번 뿐 결국 더 나이를 먹게되면 그때 가서도 오늘을 그리워 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떨어진 체력과  여전히 동일한 삶의 부대낌, 나이 듦에 대한 회한 등으로 피곤해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또, 삶은 예측불허이기에. 내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감상도 좋지만 현재에 충실하면서 다가올 노년을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할 때이기도 하다.


내가 해야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앞에 무수히 많은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냥 있던 곳이라 편안하고 익숙하여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도전과 준비에 소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열정은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남을 깊이 이해하며 무뎌진  감성을 깨우고 일으켜 세운다. 배운다는 것은 지치지 않는 노력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노력과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열정이 있다면 이상은 현실이 되고 뜨겁게 세상을 껴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통합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그리고 나침반 같은 열정으로 이상을 향해 나아갈 때 삶이 내게 진정으로 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세상을 볼 수 있듯이 먹고 사느라고 일에 파묻혀 피곤하다는 핑계로 어쩌면 또 다른 성장을 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의 한 가운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치고 힘들   때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낙엽이떨어지는 모습이 땅 속에 썩어 거름이 되어 다시 봄에 푸른 잎이 돋아나는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그냥 소멸 뿐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이럴 때 일수록 힘을 내야지. 헬스클럽엘 간다. 걷기 운동을 하다보니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기분이 좋다. 아직까지는 쓸만한 몸뚱아리라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사서 한 모금하니 기가 막히다. 다시 아파트 1층 쉼터로 돌아와 하늘을 본다. 하늘은 여전이 파랗고 포근하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간간이 지나가는 주민들의 발자국 모든 것이 평화롭다.  가을이 점점 짙어져간다. 푸르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나무에서 한 잎 두 잎 낙엽이 떨어지고 이제 머지 않아 빛바랜 갈색 잎으로 비행을 할 것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가을처럼 찾아온 중년,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시간이지만 가을 공원을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으려한다.지난 세월의 수많은 고비와 맞서 싸우며 달렸다면 지금은 아주 천천히 때론 멈추고 때론 쉬어가며 여유있게 걸으면 될 일이다. 계절의 흐름처럼  바로 세월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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