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 쯤이면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려야 제격인데 도시의 가을밤에 귀뚜라미는 울지 않는다. 도심의 가을은 도로변에 수북이 쌓이는 낙엽 내지는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은행나무잎의 색깔이 슬슬 변하기 시작하는데 요즘은 아직 일러서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갑자기 싸늘해진 기온으로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난 가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에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가 일쑤고 추위에 약한 몸인지라 겨울이 다가오는게 싫어서이다.
가을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서늘해진다. 이제 가을 저녁엔 반 팔은 안되겠다. 찬기운이 양팔에 슬쩍 닿을 무렵 양손으로 팔을 비벼가며 쌀쌀함을 녹이고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슬슬 날이 어두워지고 어스름 달이 뜬다. 어두컴컴해져 잘 보이지 않는 하늘임에도 노랑색 달은 또렷하다. 가을 밤은 그리움의 시간이다. 아이 들의 웃음 소리와 왁지지껄한 소리가 사라진 조용한 아파트 앞 놀이터 의자에 앉아 여름의 강가를 그리워하고 푸르른 산책로를 그리워한다. 사실 올 해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과의 대화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냥 보기만해도 좋은 산의 초록과 올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맡는 나무 냄새들, 촤르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삶의 질곡은 여전히 고되다. 일상의 번잡함, 늘 똑같이 반복되는 답답함 들을 무던히도 내리누르던 시간 들 속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은 계속되고 하루를 살아내고 또 다른 하루를 맞는 것으로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밤이 찾아온다. 누군가에겐 평온이 또 누군가에겐 걱정이 각자의 삶의 짐은 끊임없이 어깨 위로 올려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시간 너머로 달은 어김없이 뜨고 또 아침이 오면 태양을 맞이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회사 등나무 쉼터에 있던 개미 굴 입구에 개미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뜨거운 여름에 가을, 겨울을 준비하고 지금은 편안히 쉬고 있을 것같다. 어쩌면 가을은 개미들의 쉼처럼 그림을 다 그리고 남은 여백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삶을 도화지라고 가정하면 이 시대의 우리는 도화지에 빈 틈없이 그림으로 가득 채우려하는 것인지 모르겠다.여백없이 가득채운 그림이 아름다울까. 여백이 있어야 그림이 돋보이고 부족하면 또 다른 그림도 넣을 수 있는데 여백이 없다면 그림은 하나로 끝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욕심의 삶은 쉼도 여유도 없다. 그저 채우려는 욕구만 있을 뿐 비워두는데서 느끼는 여유가 없다.
가을은 그런 우리를 돌아보게하는 계절이다. 개미들처럼 때론 쉬어가고 자신을 위해 마음을 열어놓으라고 그래야 추운 겨울을 따뜻한 가슴으로 넘길수있다고 말이다. 바로 감사와 만족이다. 빈 곳이 있어야 또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잊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닌지 적당한 안분지족의 마음이 필요한 시대이다. 점점 기온이 내려간다. 뜨거웠던 여름 뒤로 언제 그랬냐 싶게 내려간 기온에 쌀쌀함을 느끼며 겸손함을 배우고 깜깜한 밤을 밝히는 달을 바라보며 빈 공간이 있어야 채울 수 있음을 배우는 가을 밤, 손에 쥔 휴대폰이 전부이고 달이 뜨는지 안뜨는지도 관심없는 세상, 하늘아래 달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여백이 있어 아름답다. 하마터면 예쁜 달빛을 놓칠 뻔했다.